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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중물] 불이야!
[마중물] 불이야!
  • 프리덤뉴스
  • 승인 2022.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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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이야!

 

불이야-!

모판 사건으로부터 얼마 후 이번엔 온 동네 사람들이 똘이 엄마 나오라고 고함치고 난리가 났다.

성님이 뛰쳐 들면서 다급한 소리로 빠께쓰(양동이) 들고 퍼떡 나온나!” 하며 다시 황급히 뛰쳐나갔다.

영문도 모르는 채 얼결에 양동이를 들고 달려갔더니 초저녁 뒷산이 벌겋게 훤했다.

산불이었다.

나이 많은 동네 어르신들이 모두 줄을 서서 우물에서 물을 길어 양동이 릴레이를 하고 있었다.

큰집 뒤쪽 장독대 너머로 불이 한창 기세를 확장하는 중이었다.

느낌이 좋지 않았다.

큰일 났구나! 어쩐담?’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산불을 진화하지 못하고 번져버리면 일대의 군유림이 다 화마에 스러질 것이고 산 위 큰집 할배의 밭도, 산 밑 두 할배의 집도 모두 타고 망가질 것이 불을 보듯 뻔했다.

 

우물질해서 한 양동이씩 들어붓는다고 잡힐 불길이 아니었다.

얌생이반장님이 우리집에 우물이 연결된 수도시설이 있는 것을 생각해내고는 호스를 연결해서 물을 쏘자고 하셨다.

반장님은 내가 이사한 후로 오가다 마주치면 고개를 외로 꼬고 절대로 인사를 하지도 받지도 않았는데, 자기가 뭔가 필요한 일이 생기면 딱 그것만 전달하고 가는 특이한 분이셨다.

거싯들에서는 젊은이 축에 들어서 자기보다 어린 대가리 이장님이 억지로 반장을 시켜놓고 부려먹는다고 불만이 많은 분이셨다.

그렇지만 사람은 좋고, 머리도 그중 낫고, 여자에게는 숫기가 없어서 그러는 거라고 큰집 할매가 오해하지 말라고 했던 분이시다.

동네의 대소사며 고장수리며 집 고치는 일 같은 것들은 실비를 받고 반장님이 다 맡아서 해내셨다.

나는 그분에게 얌생이 반장님이라고 별명을 지어줬다.

이해타산만 따지는 모습이 좀 얄미웠기 때문이다.

 

논농사를 짓는 몇몇 집에는 양수기에 연결하는 길다란 호스가 있었다.

얌생이반장님이 어르신들이 뒤뚱거리며 뛰어가 들고 오신 주둥이가 넓은 호스와 호스를 연결하여 우리집 수도꼭지에 연결된 구멍 좁은 일반 호스를 그 안에 쏙 집어넣어 연결하고 고무바로 칭칭 동여매고는 수도꼭지를 끝까지 돌려 틀었더니 연결 부위 옆으로 푸취-하면서 물이 새기는 했으나 불끄는 지점까지 물이 콸콸 나왔다.

덕분에 불길이 잡히고 큰 산불로 번지는 것을 막았다.

위기에서 반짝인 반장님의 지혜 덕분이었다.

해가 꼴딱 넘어간 무렵에 시작된 불은 깜깜해진 후에야 진화되었다.

시골은 저녁이 되면 곧바로 깜깜한 밤이 되고 하늘에는 별들이 총총 불을 밝히고 달빛이 은은하게 비추며 세상을 은밀한 노출로 신비하게 만든다.

달빛에 비친 불 꺼진 뒷산의 모습은 을씨년스럽고 처참했다.

불은 큰집 뒤 김치며 고구마 등을 저장하는 움막들과 풀숲의 키 낮은 풀들을 싸그리 태우고 오래 묵은 나무들의 몸뚱이 반 이상을 시커먼 옷을 입혀놓았다.

희고 까만 재로 뒤덮인 큰집 장독대 옆에 플래시(손전등)를 들고 주욱 늘어선 사람들 몰골이 귀신 꼴이었다.

불이 꺼지자 어르신들은 범인 색출에 나섰다.

누고?”

흰 머리에 앉은 허연 재를 털어내며 큰집 할배가 노기 서린 목소리로 외치셨다.

동네에 그런 일을 저지를만한 사람은 어린 두 녀석과 정신이 때때로 외출하는 30대 총각 뿐이었다.

 

어르신들은 총각을 의심했다.

할매들이 떼거위처럼 이구동성 그 한 사람을 지목하며 불같이 화를 내셨다.

그 아-가 작년 그러끄 산에따 불 놓다가 즈그 어매한티 딱 걸려가꼬 뚜드러 안 맞었드나?”

그런데 성님이 힐끔힐끔 곁눈질을 하면서 가만히 내 손을 잡아당겼다.

이거 아-들이 한 짓 아이가? -들 찾자.”

저번 일도 있고 해서 우리는 아이들을 의심했고 찾으러 다녔다.

우리집에도 성님집에도 애들이 없었다.

이제 의심은 확신으로 되었다.

조용조용 애들 이름을 부르며 숨을 만한 곳을 찾아다니다 못 찾은 두 여인네는 암울한 얼굴로 마주 보았다.

그리고 불길 속에서 설마?’ 하는 염려가 동시에 스치자 천둥치는 가슴 고동소리에 진정할 새도 없이 온 동네를 울먹이는 큰 소리로 이름을 부르며 불 꺼진 자리를 뛰어다녔다.

시간이 마치 엿가락 늘인 듯 흘러가는 것 같았다.

깜깜한 밤에 불이 꺼진 시커먼 산자락을 두 여인네가 온몸에 검댕을 다 묻히고 작은 손전등을 사방으로 비추며 애들을 찾아 헤매는 꼴이란!

꺼멓게 타버린 통나무라도 발견하면 둘 다 식겁해서 설마, 안돼-를 외치며 달려가 살펴보고, 나무인 것을 알고 나면 안도의 한숨을 쉬기를 반복하다가 그만 나도 모르게 오줌을 질금거렸다.

귀가하여 검댕과 재를 씻고 나오신 어르신들도 급기야 우리의 행동에 눈치를 채시고는 함께 아이들을 찾게 되었다.

별이 총총한 하늘 아래, 은은한 달빛 아래, 시골의 조그만 동네를 집어삼킨 칠흑 같은 밤을 뚫고 플래시 빛이 사방으로 뻗으며 두 녀석을 찾는 모습은 흡사 나이트클럽 싸이키 조명 같았다.

 

야야, -들 여 있다. 고마 찾고 내리와라.”

작은집 할매가 큰 소리로 우리를 불렀다.

걷는지 뛰는지 구르는지 모르게 두 여자가 산비탈을 내달려 갔더니 플래시 불빛 세례를 받은 두 녀석이 쭈뼛거리며 서로 눈치를 보고 있었다.

나는 냅다 아이를 안았고 성님은 냅다 아이에게 꿀밤을 먹였다.

다친 데는 없냐, 어디 있었냐, 혹시 너희가 불을 냈냐 물어도 고개를 가로젓기만 하면서 아이들은 커다랗게 확장된 동공으로 서로를 보고 있었다.

아이들이 놀란 것 같으니 일단 집에 가서 쉬라고 하며 어르신들이 다들 귀가하고 우리는 함께 성님 집으로 갔다.

성님은 만해가 아빠에게 맞을까 봐 나를 끌고 간 것이었다.

그분은 평소에는 낙천적인데 술을 마시면 폭력 가장으로 변해서 온 집안사람에게 주먹다짐을 하는 나쁜 습관을 가진 주취가정폭력 가해자였다.

성님은 때때로 술이 웬수다. 술만 안 먹으면 좋겠다.’라고 말하곤 했다.

그 무서운 남편이 불 끄고 화가 나서 술을 마셨으니 아이가 살아남겠느냐고 하면서 나더러 방패가 돼달랬다.

그날 밤이 이슥하도록 만해 아빠가 잠들 때까지 우리는 감자를 갈아 감자전도 부치고 호박 부침개도 만들어 먹으면서 TV를 보며 불과 무관한 잡담을 했다.

그런데 참 이상도 하지.

TV에서는 드라마, 뉴스, 코미디프로 등에서 불 관련 얘기가 짜기라도 한 듯 불쑥불쑥 튀어나왔다.

흐미- 테리비는 와 작정하고 저러나? 꺼버리라.”

참다못한 성님이 TV를 끄라고 명령하자 중학교 다니던 큰딸이 엉금엉금 기어가 TV 코앞에 있던 리모콘을 기는 자세 그대로 손으로 콕 눌러 끄고는 다시 엉금엉금 기어오더니 동생을 쿡 찌른다.

니가 그랬나?”

아이다. 야랑 둘이 그랬다.”

사진출처 2022년 2월 희수갤러리 낙화 전시회 우순남 作
사진출처 2022년 2월 희수갤러리 낙화 전시회 우순남 作

 

씨끄럽다. 아부지 듣는다. 기집아-가 와 그라나? 니 숙제는 다 했나?”

성님이 큰딸을 방으로 쫓아 보내고는 둘째 딸에게 아버지 자나 보고 오라고 시켰다.

둘째가 다녀오더니 아빠, 세상 모리고 코골고 잔다.”고 했다.

그제서야 성님은 눈초리를 치켜올리고 두 아이를 무섭게 보며 이실직고를 눈으로 명했다.

정말 너희들이 그랬어? ? 어떻게? 어디서 그랬어? 말 좀 해 봐.”

내가 채근했더니 아이들 눈에서 눈물이 비질비질 나온다.

삐죽대는 입에서는 먹던 전이 비질비질 떨어져 내렸다.

그기-, 그기-, 내기 때문이래요.”

만해가 울먹거리며 말했다.

 

자초지종은 이랬다.

아이들이 하교 후 뭐 재미난 놀이가 없나 동네를 쏘다니다가 우연히 성냥을 주웠단다.

역전다방이라고 쓰인 성냥갑에는 빨간 모자를 쓴 성냥 형제가 숨어있더란다.

아이들은 성냥을 사용해본 적이 없어서 신기했단다.

성냥갑 옆구리에 여러 번 긁어서 생채기가 난 불그죽죽한 것이 가려워요. 나를 긁어주세요.’라고 말하는 것 같더란다.

그래서 사용해보자고 결정했는데 신이 주신 양심이 그건 나쁜 짓이라고 알려줘서 몰래 숨어서 해보기로 했단다.

그래서 큰집 할배네 장독대 뒤에 겨울에 김치나 고구마를 묻어두는 짚으로 엮은 움에 숨어서 성냥불을 그어보기로 했단다.

아이들 수준에 숨기에는 그곳이 최적이었다.

 

둘이 내기를 했단다.

성냥 형제를 하나씩 나눠 갖고 그어서 불을 붙이는 놈이 이긴 것이라고 정했단다.

이기면 뭐? 그냥 이기는 것이란다.

울 아부지가 이래 하드라.”

먼저 만해가 아버지가 담배 피울 때 봤다면서 성냥을 그었단다.

불발이었다.

땅바닥에 버려져서 습해진 성냥갑이라 불이 잘 안 붙었던 모양이다.

성냥골만 바스라지고 불이 안 붙자 아이는 빨간 모자가 불량품이라고 했단다.

나는 이거 처음 봐. 될까?”

아이가 친구가 한 대로 따라 했단다.

불이 확 붙더란다.

이야-, 똘이 니 쫌 하네!”

만해가 축하의 환호성을 내지르고 아이는 이겼다고 외치며 성냥을 냅다 위로 던졌는데 움막 짚단에 불이 옮겨붙더니 갑자기 확 타오르더란다.

둘이 놀라서 그길로 냅다 튀어서 다리목까지 도망가서 정황을 살피고 있었단다.

처음에는 아무 일도 안 일어났고 괜스레 놀랐나 싶어 돌아가려는데 조금 후 움집이 활활 타오르고 산으로 번지더니 사람들이 웅성대고 다들 나와서 불 끈다고 난리더란다.

그래서 다시 다리목으로 도망가 버스정류장에 숨어서 보고 있었단다.

불도 다 끄고 사람들도 모두 돌아간 것 같지만 도저히 집으로 갈 용기가 안 나서 동네에서 한적한 곳에 할머니랑 사는 중학생 형, 누나네 집에 숨어있다가 누나에게 들켜서 슬그머니 나왔다가 붙들린 거란다.

 

성님, 이걸 어째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서울서는 애가 순진했었는데 시골 오더니 개구쟁이가 됐어요.”

내가 웃음 반 울음 반 섞어 말했더니 성님이 시큰둥하게 말한다.

뭐를 어쩌나? 니알(내일) 싹싹 빌어야지. -들이 잘못한 거는 엄마 잘못이다. , 니알 나랑 어른들한테 손이 발이 되게 빌자.”

다음 날, 정말 두 여자는 어르신들께 손이 발이 되게 빌고 있었다.

혀를 차시는 분, 애들 단속 안 했다고 나무라시는 분, 초목은 다시 자라니 괜찮다고 하시는 분, 이놈들 어디 있냐며 회초리를 좀 때려야 한다는 분들이 다들 한 말씀씩 보태시며 화마의 해를 입은 당사자인 큰집 할배의 눈치를 살피며 애먼 하늘을 올려다보는데, 큰집 할매는 특유의 배시시 웃는 얼굴로 달각거리는 틀니 소리를 내며 일 없다.”를 연방 말씀하셨고, 큰집 할배는 고손지가 저지른 일인데 우짜겠나? 없던 일로 하고 돌아들 가래이.”하고 말씀하셔서 그 난장을 한 방에 정리하셨다.

 

그날, 학교에 다녀온 아이들을 데리고 다시 큰집에 방문하여 사과했을 때, 할매는 아이들에게 미숫물에 설탕을 타 주시며 아끼시던 콩사탕을 주셨다.

할배는 삐식이 웃으시면서 사나가 그만 일로 주눅 들마 안 된다.

난도 아-쩍으는 시망시런 짓 마이 했다.

그기 다 사나 되는 과정이다.” 하시면서 허허허 소리내어 웃고는 무릎 꿇고 빌던 아이들을 잡아당겨 바로 앉히시고는 후에는 큰일 치르마 절대로 들키지 마라. 들키가 안 되는 일이마 하지를 말고.” 하셨다.

그 어떤 나무람과 훈계보다 더 따끔하고도 정감 있는 교훈이셨다.

아이들은 그 후 다시는 들키가 안 되는 일은 하지 않았다.

 

光明時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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