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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덤 논단] 지피지기 – 스탈린의 일국사회주의론과 트로츠키의 영구혁명론
[프리덤 논단] 지피지기 – 스탈린의 일국사회주의론과 트로츠키의 영구혁명론
  • 프리덤뉴스
  • 승인 2022.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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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탈린의 일국사회주의론과 트로츠키의 영구혁명론

최태열(프리덤뉴스 논설위원)

 

 

레닌 사망(1924년) 이후 소련에서 후계자 싸움이 치열하게 벌어졌다. 레닌은 유언장을 남겨 자신의 후계자가 될 가능성이 있는 인물로 5명을 언급하였는데 그 중 어느 한명도 후계자로 명시적으로 지목하지 않았다. 오히려 각자의 단점만 주로 부각하였다. 그들 5명은 스탈린, 트로츠키. 지노비예프, 카메네프, 부하린이었다.

 

후세 사람들은 레닌이 내심 후계자로 인정한 이는 스탈린이 아니라 트로츠키였을 것이라고 대체로 보고 있다. 레닌은 유언장에서 스탈린은 성격이 급하고 잔인하여 서기장자리에서 해임하여야 한다고 한 데 비하여, 트로츠키는 당내에서 가장 뛰어난 인물이지만 오만하고 독단적인 면이 강하므로 다른 사람들이 그 부분을 바로잡아야 한다라고 하였다. 레닌은 내심 트로츠키를 자신의 후계자로 인정하면서도 여러 명에 의한 집단지도체제를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레닌의 유언장은 당시에 공개되지 않았고 흐루시초프 시대가 되어서야 공개될 수 있었다.

 

스탈린은 일찍부터 레닌과 보조를 맞추었고 당의 선전지였던 프라우다의 편집장을 지낸 오래된 볼세비키혁명가였던 반면에 트로츠키는 1917년 5월에서야 미국에서 돌아와서 볼세비키진영에 가담한 신참자였다. 1917년 2월혁명에 의하여 차르체제가 무너지고 케렌스키임시정부가 들어섰는데 레닌을 제외한 다수의 볼세비키지도자들은 임시정부와의 타협을 원하였으나 레닌은 즉각적인 사회주의혁명을 일으켜 권력을 탈취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트로츠키는 레닌의 주장에 적극 동조하여 적위대를 이끌고 임시정부를 공격하여 사실상 무혈혁명을 성공시켰다.

 

자신이 주도한 10월혁명의 성공에 힘입어 트로츠키는 볼세비키로 입성한지 1년도 안되어 레닌에 이은 2인자로 뛰어올랐다. 트로츠키는 뛰어난 연설실력과 문필력으로 젊은 볼세비키병사들을 휘어잡았으며 그의 이러한 지도력을 인정하여 레닌은 그를 군사혁명위원회 위원장으로 임명하였고 그는 그 이후 벌어진 내전에서 국방장관으로 적군의 승리를 이끌면서 소비에트의 안정을 획득한 주인공이 되었다.

 

레닌 사후 스탈린은 공산당 서기장이라는 자리를 활용하여 가장 강력한 라이벌이었던 트로츠키를 가장 먼저 권좌에서 몰아내었다. 그것은 다른 3자의 협조하에 가능하였다. 그후 스탈린은 지노비예프와 카메네프를 숙청하였고 마지막에 부하린까지 숙청함으로써 마침내 유일한 최고지도자로서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트로츠키는 1927년 당에서 제명된 후 시베리아로 유형되었다가 1929년 소련에서 추방되었다. 트로츠키는 자신의 망명을 받아들인 멕시코에 정착하면서 스탈린이 주도하는 코민테른에 대항하는 제4인터내셔널을 조직하기도 하였는데 스탈린이 파견한 암살자에 의하여 1940년 멕시코에서 암살당하였다.

 

스탈린은 레닌 사후 일국사회주의론을 제시하였다. 일국사회주의론은 서유럽의 공산혁명에 관계없이 소련의 생산력을 증대시킨다면 부르조아자본주의를 거치지 않고도 바로 공산주의로 넘어갈 수 있다는 이론이었다. 내전으로 피폐해진 상태에서 다른 나라에 혁명의 영향력을 전파하는 것은 무리이므로 일단 소련 한나라만이라도 독자적으로 사회주의국가로서의 내실을 다진 후에 국제혁명을 진행하여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이는 그 당시 소련의 공산화로 인한 급격한 변화에 지친 다수의 소련인민들이 찬성하는 입장이었고 관료집단과 군의 고급장교들의 성향에도 맞는 이론이었다. 그런데 그것은 공산당선언에서 만국의 프롤레타리아의 단결을 촉구하면서 국제주의 노선을 추구하였던 마르크스의 주장과는 배치되는 이론이었다.

 

트로츠키의 영구혁명론은 마르크스의 국제주의노선을 충실히 따르는 입장이었다. 트로츠키는 소련 한나라만으로는 사회주의혁명을 이룰 수 없으므로 공산당의 정책은 서유럽의 혁명을 지원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자본주의국가와 사회주의국가는 어차피 공존할 수 없는 체제이므로 소련은 다른 나라들의 혁명에 적극적으로 관여하여 전세계가 연속적으로 공산혁명을 성공시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스탈린의 일국사회주의노선은 소련내에서 스탈린의 독재적 탄압을 정당화하는 이론으로 작용한 한편, 코민테른이 성립된 후 소련이 전세계 공산주의의 종주국으로서 다른 나라들의 공산주의자들을 일방적으로 이끄는 방식으로 작용하기도 하였다. 그에 반하여 트로츠키의 영구혁명론은 코민테른의 일방적인 테제에 따르기보다는 각 나라들의 상황에 맞는 공산혁명을 추진하면서 소련과 대등한 입장에서 프롤레타리아계급의 아래로부터의 혁명을 추구하였다.

 

역사는 스탈린의 승리로 귀결되었고 그에 따라 소련은 인민의 자유로운 소비생활의 향상을 뒤로 한 채 위로부터 강제적인 중화학공업화와 집단농장화와 인종격리 등 숙청과 살인으로 얼룩지는 참상을 빚게 되었고 전세계의 공산화도 스탈린방식을 따르면서 유사한 참상으로 끝나게 되었다. 만약 트로츠키가 레닌의 뒤를 이어받아 소련의 권력을 장악하여 그의 영구혁명론이 세계로 전파되었다면 역사는 또다른 모습을 띠게 되었을지 모른다는 가정을 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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