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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중물] “나, 쥐 맞았어!”
[마중물] “나, 쥐 맞았어!”
  • 프리덤뉴스
  • 승인 2022.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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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쥐 맞았어!”

강하정(시인, 프리덤뉴스 객원논설위원)

 

대학교에 갓 입학했을 때의 일이다. 딱 이맘때였다.

성신여대, 고려대학교, 국민대학교 학생들이 조인트로 수락산 계곡 청소 봉사활동을 갔다.

처음 만난 남녀 학생들은 서로 인사를 하고 잡담을 하다가 마음이 맞는 친구끼리 삼삼오오 모여서 버스를 타고 봉사활동을 할 수락산까지 이동했다.

거기서 4학년 복학생 선배의 지도로 조를 짜고 조별로 구역을 정해 쓰레기도 줍고 엉뚱한 자리로 옮겨 간 바위를 제 자리로 돌려놓는 일도 하고 행락객들이 깨끗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환경지도 활동도 하면서 즐겁게 봉사활동을 했다.

점심시간이 되어 지도부에서 준비한 빵과 음료수 등으로 배를 채우고 있는데, 수락산에서 행락객을 상대로 장사를 하는 사람이라면서 쓰레기 치워줘서 고맙다며 커다란 수박을 세 덩이나 가져와서 썩썩 잘라 주셨다.

환호와 박수로 환영하며 수박을 먹고,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물을 촵촵 차면서 깔깔깔 웃던 우리 새내기들은 대학생활은 이런 것이구나하고 느끼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오후에는 레크레이션을 했다. 각자 장기자랑도 하고 요즘의 개그맨은 저리 가라 하게 웃겨준 남학생도 있었고, 수건돌리기 할 때는 복학생 선배들은 새내기 중에서 예쁜 여학생 후배를 선점하려고 갖은 노력을 다하며 경쟁을 하기도 했다.

국민대학교 새내기 중에 키가 농구선수만큼 크고 허우대 멀쩡한 잘생긴 남학생이 있었다. 여학생들은 말은 하지 않았지만, 모두가 그 학생을 곁눈질하고 서로 쟤 진짜 잘생겼다라고 속삭이며 그 남학생에게 호감을 보였다.

지금도 그렇지만 나는 그런 면에는 좀 거리가 멀다. 남편에게 사랑한다는 그 간단한 말을 안 해주고 속앓이를 시킬 만큼 나는 무뚝뚝했다. 그때도 나는 여학생이 아닌 남학생들과 주로 어울리며 , 얌마, 어이~’ 등의 단어를 아무렇지도 않게 툭툭 던지는 선머슴이었다.

다른 여학생들이 알록달록 멋진 옷을 입은 것과는 상반되게, 나는 아버지가 입다 작아진 와이셔츠를 팔소매를 쭉 걷어올려서 입었고, 당시 유행이던 멋진 청바지 대신 덩치 큰 친구가 작다고 버리려던 청바지를 허리에 고무줄을 넣어 줄여서 입고 다녔다. 내 친구들은 그런 나에게 제발 옷 좀 사 입으라고 잔소리를 해댔다. 가정형편이 좋지 않던 내게는 당시 몇천 원이면 살 수 있던 남대문표여성복도 사치였다. 그래서 나는 내 사정을 알지 못하는 친구들에게 항상 타박을 들어야 했다. 서로를 모르던 학기 초에는 그런 모습의 나를 보고 동기들이 조교나 부교수로 착각을 하기도 했었다.

 

그날도 역시 같은 옷차림이었다. 티셔츠에 청바지 차림인 남학생들 틈에서 크고 헐렁한 하얀 와이셔츠에 펑퍼짐한 청바지 차림의 나는 생각 밖으로 인기였다. 여학교에 다니는 나는 그날 고려대, 국민대 남학생들과 얘기를 많이 했고 친구가 많이 생겼다. 몇몇 나이 든 선배들이 새내기 여자 후배 꼬시기에 몰두하는 동안에 우리는 책 얘기도 하고, 학교 얘기도 하고, 아르바이트 얘기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해가 저물 무렵 수락산 계곡물이 차가워지고 바람이 싸늘하다고 느낄 때 지도부는 하산을 명령했다.

그런데 갑자기 소낙비가 쏟아졌다. 어두워지는데 비까지 왁자하게 내려버리니 우리는 혼비백산했다. 빨라진 걸음이 급기야 뜀박질을 하는데 바위가 미끄러워 넘어지고 자빠지는 여학생이 속출했다. 연약한 척하며 남학생들의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여학생들이 꽤나 있었다. 그 와중에도 나는 넘어진 여학생 친구들을 일으켜주고 손잡아주며 남학생들과 같이 행동을 했다.

돌아오는 버스에 나랑 나란히 앉게 된 국민대 그 잘생긴 친구가 내게 수줍게 이름을 물었다. ‘무슨 머시매가 요라고 매가리가 없다냐? 생긴 거허고 영 딴 판이네.’

지금은 그 이름은 잊었는데 성은 박씨였다. 이름이 외자였던 것도 같고.

어쨌거나 그 친구가 내가 맘에 든단다. ?

나는 지를 머시매로 보는 가시내인데 그 친구는 나를 여자로 보는 남자이고 싶었나 보더라.

솔직히 말하자면 나도 꾸며놓으면 어디 가서 빠지지 않는 마스크에 남들이 부러워하는 글래머다. (자화자찬이다.)

나는 그 친구 팔을 툭 치며 이름을 알려주고 오늘 어땠냐고 물었다.

힘들었다는 의외의 대답이었다.

? 뭐가 힘들었어?”

. 나는 이런 데 처음 와 보는 거여이.”

그건 나도 마찬가지인데?”

산에 처음 올라갔다니께이.”

그 친구는 잘생긴 외모와 달리 머리가 영 따라주지 않았던가 보다. 3수 끝에 국민대학교에 겨우 합격했다고 했다. 자기는 공부만 하고 있었단다.

불쌍했다. 집이 어디냐고 물었더니 서천이라고 했던 것 같다. 자기 집에서는 바다만 가깝고 산은 주변에 없고 온통 논밭이라고 했다. 충청도 특유의 느리면서 구수한 억양으로 천천히 말했다. 재미있었다.

그런저런 얘기를 주고받으며 시간 가는 줄 모르다가, 버스가 우리를 처음 집결했던 돈암동에 토해놓고 달아났다.

 

얘들아, 우리 커피 한 잔씩 마시고 갈까? 비 맞아서 추운데, 어때?” 하며 헤어지기가 아쉬운 듯 복학생 선배가 말하자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다들 춥다면서 다방으로 몰려 들어갔다.

레지가 깜짝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에 빠진 생쥐 꼴인 우리가 폭신한 의자를 차지하고 앉는 모습을 못마땅하게 바라보는데 마치 저것들이 의자를 다 적셔놓으면 어떻게 말려? 큰일 났네.’ 하는 것 같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뜨끈한 다방 커피를 프림 둘, 설탕 둘을 외치며 주문해놓고는 각자 떠들기도 하고 고단한 듯 널브러지기도 하는 등 우리가 다방을 점령해버렸다.

어르신 몇 분이 ~을 때다, 어느 학교 학생들이냐?”하고 물으셨고, 내 학교 선배 언니가 각자 다르다며 학교명을 호명할 때마다 그 학교 학생들이 저요!” 하며 손을 번쩍 들어서 어르신들이 껄껄 웃으셨다.

그렇게 따뜻한 커피를 마시고 비가 좀 누그러지기를 기다리며 조금 있자니 잠이 솔솔 오는 거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앉은 채 끄덕끄덕 졸았고, 급기야 몇몇 놀놀한 선배들은 의자 몇 개를 죽 늘어놓고 그 위에 누워서 아예 잠을 청했다. 흘낏 보니 다방 주인이 눈을 흘기고 있었다. 레지는 입이 비죽이 나왔더라.

 

얼마나 지났을까? 갑자기 소란이 일었다. 여학생들이 빽, 빼액- 소리를 지르면서 의자 위로 올라가거나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있었다.

왜 그래?”

쥐다, !”

?

그런데 그때 앉은 채 축 처져서 의자 끝에 궁둥이만 겨우 걸친 채 눕다시피 자던 그 잘생긴 커다란 눈을 번-히 뜬 국민대 박가의 입에서 느릿느릿 튀어나온 말.

-! , 쥐 맞았어!”

그 말에 나는 허파가 뒤집히게 웃었다.

어디에, 어디에, 하하하하- 어디에 맞았는데?”

얼굴에. 뭐가 입에 들어갔던 것 같여.”

막내가 큰누나에게 어린양 부리듯 그렇게 말하는 거다.

으악! 아윽, 더러워! , 입 헹궈!”

놀란 쥐가 암팡지게 쌔려 밟고 도약한 그 친구의 입과 코가 벌겋게 부어오르고 있었다.

다들 진저리를 치는데 그 친구는 멍청히 나만 보고 있었고, 나 혼자 미치게 웃었다.

다방 천정에서 갑자기 쥐 한 마리가 툭 떨어져서 입을 헤- 벌리고 자던 그 친구 얼굴을 직통으로 박치기하고 점프해서 어디론가 도망했다는 거였다.

잠들지 않고 있던 고려대 선배 언니가 그 광경을 다 봤단다.

쥐 꼬리가 그 헤- 벌린 입으로 쏙 들어가는 광경을!

여학생들이 징그럽다고 난리를 치는 동안 나는 다방 주인과 레지와 함께 쥐를 잡으러 다녔다.

웃기는 건, 그 많은 남학생이 단 한 명도 쥐를 잡으려 하지 않았고, 오히려 여학생들처럼 의자와 탁자 위로 죄다 올라가서 몸을 사렸다는 것. 행여나 천정에서 또 쥐가 떨어질까 봐 뚤렛뚤렛 천정을 살피면서.

레지는 소리소리 지르며 빗자루를 갖고 사방을 쑤시고 때리고 다녔고, 나는 쥐 따위는 장난감이었던지라 쥐가 달아났을 법한 구멍을 찾아 레이다를 최대한 가동해서 찾고 다녔다.

주인은 탁자에 올라간 학생들에게 내려오라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고 있었다.

그러다 결국 내 손에 그 발칙한 쥐가 잡혔다. 어떻게 잡았냐고? 쥐 잡는 것은 생각보다 쉽다.

구석으로 몰아서 청소 양동이를 뒤집어씌우고, 들추고 도망치지 못하게 양동이를 깔고 앉는 거다. 뭐 그러다 꼬리가 양동이에 깔려서 반쯤 밖으로 나오기는 했지만.

도망치려고 사력을 다해 양동이 속에서 발버둥 치는 쥐를 사뿐히 깔고 앉은 엉덩이가 리드미컬하게 양동이를 통해 전달되는 쿵쾅대는 진동에 가벼운 희열을 느끼는데 다들 쥐보다 나 때문에 더 놀란 모습이더라.

어쨌거나 내가 쥐를 잡는 모습을 본 국민대 그 친구가 또 느리처분하게 내뱉은 말에 나는 뱃가죽에 쥐가 나도록 웃어야 했다.

, 진짜 쥐 잘 잡는구나이. 우찌케 그리 잘 잡는겨어? 디게 멋지다이. 내 복수를 해줬잖여이. 저 쥐도, 지금 꼬리가 아프겄지이?”

으아~ 뭐 저런 녀석이 다 있어?’

그러니까 양동이 밖으로 반쯤 나온 쥐꼬리가 자기 입에 들어갔던 것에 대한 복수란다. 아주 소심한 복수였다.

잘생긴 커다란 눈을 껌벅껌벅하던 그 친구는 낮에 먹다 남은 빵 봉지에서 빵을 하나 꺼내더니 쥐 꼬리가 들어갔던 입에 물었다.

, 너 입도 안 헹구고 빵 먹냐?” 하며 눈을 흘겼더니, , 글쎄 ... 어때...” 그러는 거다.

그날은 봉사고 수락산이고 다 잊혀진 과거사가 되고 오직 얼굴에 쥐 맞고 쥐꼬리 들어갔던 입으로 빵 먹은 그 녀석 때문에 두고두고 잊을 수 없는 날이 되었다.

그 친구 지금은 뭐하냐고?

...

오래전 들린 소문에 훈남 베테랑 파일럿이라 하더라.

, 박 머시기야~! 너 지금은 입 잘 헹구니?”

 

光明時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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