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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덤 논단]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는 명제는 오류
[프리덤 논단]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는 명제는 오류
  • 프리덤뉴스
  • 승인 2022.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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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프롤레타리아들은 부르조아지를 타도하고 권력을 잡겠다는 ‘의식’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기존 질서 속에서 나름 열심히 노력하여 잘 살아 보겠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훨씬 많았다.
동일한 환경에서 자란 형제들이라도 어떤 책을 읽고 어떤 사람의 영향을 받았는가에 따라 의식은 달라지며 삶의 방향도 달라지는 것이다.

지피지기 –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라는 명제에 대하여

최태열(프리덤뉴스 논설위원)

 

 

마르크스가 엥겔스와 함께 “공산당선언(1848년)”을 발표하면서 세상은 뒤집어졌다.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떠돌고 있다. 공산주의라는 유령이.”라는 문구로 시작되는 그 선언으로 말미암아, 세계는 부르조아지들이 지배하는 자본주의사회를 엎어버리고 억압과 착취가 없는 지상낙원을 건설하려고 한 젊은 공산혁명가들의 꿈을 실현시키려는 무대로 변하였다.

 

공산혁명을 분발시킨 마르크스의 이론은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라는 명제에서 출발하였다. 그것은 “독일이데올로기(1846년)”에서 언급한 것으로서 변증법적 유물사관의 기초가 되었다.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프롤레타리아는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하는 바로 그 계급적 ‘존재’에 의하여 공산혁명의 주체가 될 수밖에 없는 ‘의식’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었다.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라는 명제가 바로 유물론이다. 생산수단의 소유에 기반하는 생산관계에 의하여 결정되는 생산력관계라는 하부구조에 의하여 정치, 종교, 문화 등의 상부구조가 결정된다는 것이 유물론이며, 생산수단의 소유와 비소유에 의하여 구분되는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간의 모순의 양적팽창과 질적폭발을 거치는 변증법적 변화가 역사발전의 법칙이라는 것이 변증법적 유물사관이다.

 

그러므로 마르크스이론의 출발이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라는 명제라 할 수 있다. 그 명제에 의하여 역사는 다시 해석되었고 그것으로부터 프롤레타리아는 공산혁명의 주체가 될 수밖에 없다고 하는 의무가 이론적 강제의 형태로 부여되었다.

 

그런데 역사적 진실은 그러하지 아니하였다. 공산혁명의 주체가 된 것은 프롤레타리아가 아니었고 그 주도자들은 쁘띠부르조아지출신의 지식인 그룹이었다. 마르크스도 엥겔스도 레닌도 그람시도 모택동도 프롤레타리아출신이 아니었다. 그들 모두 쁘띠부르조아지출신의 반항적인 청년 지식인들이었다. 그들이 세상을 바꾸자면서 프롤레타리아들을 선동하였던 것이다.

 

대부분의 프롤레타리아들은 부르조아지를 타도하고 권력을 잡겠다는 ‘의식’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기존 질서 속에서 나름 열심히 노력하여 잘 살아 보겠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훨씬 많았다. 그런데도 “당신들이 지금 못 살고 있는 것은 당신들 탓이 아니다. 모든 생산물가치의 원천은 노동인데 아무런 노동도 하지 않는 부르조아지들이 당신들에게 돌아가야 할 몫을 빼앗아갔다. 이런 더러운 세상을 뒤집어엎자. 당신들이 잃을 것은 당신들을 묶고 있는 족쇄뿐이다. 만국의 프롤레타이아여 단결하라.”라고 선동하였던 것이다.

 

존재가 의식을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우리의 일상에서 늘 발견하는 것이다. 어릴 때 사실상 존재의 조건이 동일한 형제들의 의식이 동일한가. 그렇지 않다는 것은 경험으로 다들 알고 있다. 동일한 환경에서 자란 형제들이라도 어떤 책을 읽고 어떤 사람의 영향을 받았는가에 따라 의식은 달라지며 삶의 방향도 달라지는 것이다. 존재가 의식을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의식이 존재를 규정한다는 것이 우리들이 체득한 경험적 진실이다.

 

그러므로 사람을 결정짓는 것은 그 자신이 처한 환경이 아니라 그가 가진 생각이다. 같은 환경에 처한 사람이라도 생각이 어떤가에 따라 앞으로의 삶이 달라지는 것이다. 개인만이 아니라 조직도 그러 하다. 조직구성원이 처한 환경이 그들을 결정짓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생각을 바꾸면 환경도 바꿀 수 있다. 그런 점을 강조한 것이 그람시가 주장한 진지전이라는 개념이다. 대중의 사상을 바꾸어야 혁명이 성공할 수 있으므로 장기적인 진지전을 전개하여야 한다고 그람시가 주장한 것이다.

 

그럼에도 아직도 일부 좌파인사들은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라고 하는 마르크스의 명제를 믿고 있다. 남민전전사였다는 혁명적 선배의 지위를 가지고 좌파내에서 나름 발언권을 가지고 있는 홍세화의 의식에 그런 명제가 깔려 있다. 그가 쓴 글들의 근저에는 프롤레타리아가 무산자로서의 혁명적 계급의식을 가져야 하는데 그러하지 않은 데 대한 안타까움이 묻어 있다. 존재가 의식을 규정하여야 하는데 그러하지 못한 현상을 혁명에 대한 배신이리고 비난하고 있는 것이다.

 

우파의 활동가들은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라고 하는 마르크스의 명제가 역사적 진실에 부합하지 아니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대중의 의식을 우파적 가치로 무장하도록 할 지도력을 가질 수 있도록 학습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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