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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피지기] 좌파 진지전의 무기, 용어전술
[지피지기] 좌파 진지전의 무기, 용어전술
  • 프리덤뉴스
  • 승인 2022.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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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현단계 대한민국이 추구하여야 할 방향은 자유혁명의 방향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내가 생각하는 자유혁명은 2단계로 구성되는데 첫단계가 개인의 정신혁명이며 둘째 단계가 사회의 제도혁명이다. 정신혁명은 자신이 죽을 때까지 추구하여야 할 소명을 발견하는 것이며, 제도혁명은 그러한 정신혁명을 거친 개인들이 협력하여 수많은 규제로 묶인 현재의 각종 법규들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개인의 자유와 기업의 창의가 꽃피는 자유사회로 만드는 것이다. 통일도 그러한 자유혁명의 방향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지피지기 – 좌파 진지전의 무기, 용어전술

최태열(논설위원, 노무사) 

 

좌파의 성공전략의 두가지는 통일전선전략과 진지전전략이다. 나는 앞의 “33. 좌파의 성공전략 두 가지 – 통일전선선략과 진지전전략(2022.5.26.)”이라는 글에서 그것을 설명하였다. 통일전선전략이 기본전략이라면 진지전전략은 실행전략이라 할 수 있다.

 

그 중 오늘날 보다 주목하여야 할 것은 좌파의 진지전전략에 관한 것이라 할 것이다. 좌파가 권력을 장악하는 방법은 기동전과 진지전으로 나눌 수 있다. 기동전은 그들의 물리력이 강하다고 생각되는 결정적 시기가 왔다고 판단할 때 물리력으로 정권을 뒤집는 것을 말하며, 진지전은 대중을 자신들에게 동조하도록 좌파의 가치관을 대중에게 심어주는 장기적인 사상전을 말한다.

 

한국에서 좌파의 가장 큰 규모의 기동전으로는 6.25전쟁을 들 수 있으며, 그밖에 대구10월폭동, 제주4.3사건, 여순반란사건도 기동전이라 할 수 있다. 나는 5.18도 좌파의 기동전의 하나로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한국에서 좌파의 기동전은 모두 실패하였다. 그 원인은 자유대한민국을 지키려는 한국인들의 의지와 튼튼한 한미동맹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기동전이 실패한 후 좌파는 그들의 핵심전략을 진지전전략으로 변경하였다. 진지전전략은 이탈리아 공산당의 창시자인 그람시가 제시한 전략이었다. 그람시가 제시한 진지전전략은 대한민국에서 대성공을 거두었다. 1987년 소위 민주화대투쟁을 전개한 후 우파정권과 타협하여 만들어진 87체제하에서 각분야에서 자유의 영역이 커짐에 따라 좌파의 핵심세력인 주사파들은 각 분야에 파고들어 자신들의 진지를 구축하였다.

 

언론계, 교육계, 법조계, 문화계 등 모든 분야에 파고든 그들은 튼튼한 사상의 강철대오를 형성하여 좌파적 가치관과 역사관을 모든 분야에 심어 놓았다. 그들은 김영삼정권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정치권에 진입하면서 차츰 정치권의 심장부로 파고 들었고 마침내 문재인정권에서 권력을 완전히 장악하게 된 것이었다.

 

2022.3.9. 윤석열이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우파진영으로 정권교체는 되었으나 좌파들이 구축해 놓은 진지들은 아직도 모든 분야에서 그대로 세력을 유지하고 있다. 그들은 정권을 빼앗긴 분노를 참지 못하고 반격을 가하고 있는 중이다. 그 가장 첨병이 언론이라 할 수 있다. 언론노조가 장악한 방송과 신문들은 윤석열정권이 잘한 점은 감추고 부족한 점들은 과장하면서 국민들을 선동하고 여론을 선점하고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2024년의 총선과 2027년의 대선에서 우파가 승리할 것은 기대난망이다. 어떻게 하여야 할 것인가. 가장 시급한 것은 이러다가 정권을 다시 좌파에게 빼앗기고 말 것이라는 위기의식을 가지는 것이다. 만약 2027년에 또다시 좌파에게 정권을 빼앗긴다면 그때에는 문재인정권보다 훨씬 악독한 정권이 등장할 것이 분명하다. 문재인식으로 하다 보니 정권이 넘어 갔다면서 좌파정권을 영속하게 만들 훨씬 강력한 수단을 강구할 것이 틀림없다.

 

우파진영이 그런 위기의식을 공유한 다음으로 하여야 할 일은 무엇인가. 그것은 이 전쟁이 이념전쟁이라는 것을 명심하고 이념과 역사에 대한 투철한 학습이 없이는 이기기 어렵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다. 좌파와의 이념전쟁에서의 학습의 기본은 지피지기의 자세인데 가장 먼저 하여야 할 것은 용어전술에 대한 이해라고 본다. 사상을 표현하는 기초가 용어라 할 수 있는데 좌파는 그 용어들에 대한 선점을 해 왔으므로 좌파에 의하여 만들어진 용어 중 상식으로 고착된 것들에 대한 뿌리를 캐어보고 제대로 된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이 전쟁의 출발이라 할 수 있다.

 

좌파에 의하여 잘못 사용되고 있는 용어들은 아주 많다. 좌파만이 아니라 우파내에서도 가치가 아닌 이익을 좇는 배신자들이 만든 프레임도 있고 우파의 식자들에 의하여 의도하지 않은 잘못된 논리를 퍼뜨리는 경우도 있다. 대중은 그러한 용어들을 일상적으로 사용하면서 당연한 상식으로 받아들이고 있으므로 그것을 바로잡는 것은 아주 힘들다. 그러나 그것을 바로잡지 못하면 용어사용에서부터 지고 들어가는 것이므로 반드시 바로잡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한 용어들로 내가 꼽는 것들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진보좌파 보수우파, 민주주의 민주화운동, 친일파 토착왜구, 극우태극기세력, 혁명과 개혁, 소득양극화 부익부빈익빈, 공정과 정의, 신자유주의, 민영화, 쿠데타, 위안부 정신대, 민족정통성 등이다. 이 글에서는 몇가지 대표적인 용어들만 언급해 보기로 한다.

 

첫째, 진보좌파 보수우파라는 용어이다. 우파진영에서도 스스로를 보수라고 부르는 것이 대부분이다. 우파유튜브 거의 전부가 보수라고 하고 있고 국민의힘 초선의원들의 공부모임도 ‘명불허전 보수다’라는 구호를 붙이고 있으며 지난번 교육감선거에 나온 우파후보들도 모두 중도보수후보단일화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언론에서도 모두 진보 보수라는 구분을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좌파가 스스로를 진보라고 하는 것은 마르크스가 주장한 역사발전5단계설을 따르는 것이므로 그렇다 하더라도 우파 스스로 보수라고 부르는 것은 정말 정신없는 짓이다.

 

서구에서 보수주의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과의 1대1의 만남을 통해 개인의 소명을 발견하는 종교개혁에서 비롯된 것으로서 개인의 자유를 그 기초로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우파가 스스로를 보수라고 할 때에는 서구의 개인의 자유와 소명이라는 전통이 없는 것이다. 오히려 한국인의 전통적 가치는 개인보다는 충효를 강조하는 국가와 가문을 중시하는 집단주의적 정서이다. 개인의 자유와 기업의 창의를 중시하는 우파라면 한국에서 더 이상 보수라고 불러서는 안되는 것이다. 우파는 스스로를 제발 보수라 부르지 말자. 우파는 자유진영이라고 불러야 한다.

 

둘째, 민주주의와 민주화운동이라고 하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절대 가치이며 그것을 추구하는 민주화운동은 항상 옳은 것이므로 민주화운동을 하느라 희생한 사람에게 보상을 하는 것은 정당하다라고 하는 것이 좌파의 주장이고 그런 주장은 한국에서 법률로 보장되고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라는 용어는 번역 자체가 잘못된 것으로서 그것이 절대선은 아니다. 그것은 목표가 아니라 수단이다. 좌파는 처음부터 민주주의를 사회주의 공산주의로 가는 수단으로 보았다. 마르크스가 그랬고 엥겔스가 그랬으며 모택동이 그러 하였다. 마르크스는 “공산당선언(1848)”에서, 엥겔스는 “공산주의의 원칙(1847)”에서 공산주의자들이 우선 내세워야 할 것이 민주주의라고 하였으며, 모택동은 “신민주주의론(1940)”에서 그것을 명확하게 하였다. 한국의 좌파들도 그것을 명확하게 인식하였는데 다만 대중에게는 그것을 숨긴 것이었다.

 

민주주의라는 용어 자체가 잘못 번역되었으므로 나는 그것을 대중정치로 번역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게 하여야 여러 정치형태 중의 하나인 그것의 본질을 정확하게 짚을 수 있다. 민주주의가 실제로 표현되는 것은 1인 1표와 다수결인데 그것은 항상 오류의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바둑의 다음 한 수를 다수결로 결정하는 것이 얼마나 잘못된 결정이겠는가. 다수결이 올바른 결정이 되기 위하여서는 정보전달자의 편향 없는 전달과 정부수령자의 수준의 평준화가 전제되어야 하는데 그것은 현실가능하지 않은 전제들이다. 현실적으로 가장 올바른 결정이 되기 위하여서는 그 분야에 정통한 소수의 전문가들의 합의로 내는 결정이어야 할 것이다.

 

셋째, 친일파라는 용어이다. 친일파라는 말은 일제시대에 그 식민지상태를 유지하면서 일제에 부역한 민족배신자들이라는 경멸적 의미로 고착된 단어이다. 그런데 알고 보면 친일파라는 말이 그러한 의미로 사용되었던 것은 일제시대때가 아니었다. 그것은 해방 이후에 북한에서 소련의 앞잡이로 김일성을 내세워 공산정권을 세우려 하였던 소련의 정치장교들이 전략적으로 제시한 용어였다. 친일파가 민족의 배신자라는 프레임을 만들어 북한에 존재하였던 지주들과 지식인계층을 배제하고 자신들을 충실히 따르는 공산주의자들이 정권을 쉽게 잡게 하기 위한 소련의 전략이었다.

 

그것은 그 후 북한은 항일무장투쟁가들이 친일파를 숙청하여 민족정통성이 있는 국가인데 반하여, 남한은 친일파들이 청산되지 못하고 새로운 지배자인 미국의 앞잡이가 되어 정통성이 결여된 정권이라는 프레임으로 굳어졌다. 오늘날 좌파는 일본과의 협력을 주장하는 우파에게 친일파 및 토착왜구라는 프레임을 씌워 대중과 유리시키는 전략을 계속 사용하고 있다.

 

넷째, 극우태극기세력이라는 용어이다. 2019년 10월 광화문광장은 박근혜탄핵의 거짓을 밝히고 문재인좌파정권을 타도하자는 연인원 수백만명의 태극기애국시민들로 넘쳐났다. 그런데 좌파는 그 집회에 참석한 애국시민들에게 극우세력이라는 프레임을 씌웠다. 극우라는 표현은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하여 폭력을 사용하는 집단에게 붙이는 표현인데 그 당시 광화문광장에 모였던 사람들은 폭력과는 전혀 상관없는 평화적 집회를 하였다.

 

그런데 그 중 일부 인사들이 군복을 입는다든지 청와대로 쳐들어 가자든지 하는 말을 하였다고 해서 그러한 프레임을 씌웠던 것이다. 그런데 태극기애국시민들에게 극우라는 표현을 쓴 것은 좌파만이 아니었다. 우파정치인들도 그들을 극우세력이라고 하면서 거리를 두었다. 참으로 못난 우파정치인들이었다.

 

다섯째, 좌파는 혁명, 우파는 개혁이라는 프레임이다. 이 프레임은 좌파가 아니라 우파에서 더 많이 사용하는 것같다. 대표적인 것이 고성국박사가 저술한 “머리는 진보 가슴은 보수 당신은 어느쪽인가(2021)”라는 저서에서 고박사는 좌파는 혁명을 추진하고 우파는 개혁을 추진한다는 식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나는 그런 방식으로 용어를 구분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혁명은 공산혁명만 있는 것이 아니다. 좋은 의미로 사용되는 혁명도 많다. 시민혁명, 산업혁명 같은 단어가 그런 것이다. 나는 앞의 글 “5. 우파도 혁명을 꿈꿀 수 있어야 한다(2022.4.22.)”에서 그런 논리를 폈다. 혁명은 근본적인 변화를 말하는 것이다. 점진적인 변화를 의미하는 개혁도 필요하지만 때로는 근본적인 변화도 필요한 것이다.

 

나는 현단계 대한민국이 추구하여야 할 방향은 자유혁명의 방향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내가 생각하는 자유혁명은 2단계로 구성되는데 첫단계가 개인의 정신혁명이며 둘째 단계가 사회의 제도혁명이다. 정신혁명은 자신이 죽을 때까지 추구하여야 할 소명을 발견하는 것이며, 제도혁명은 그러한 정신혁명을 거친 개인들이 협력하여 수많은 규제로 묶인 현재의 각종 법규들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개인의 자유와 기업의 창의가 꽃피는 자유사회로 만드는 것이다. 통일도 그러한 자유혁명의 방향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이상 다섯가지만 언급하였는데 그 이외에도 여러 가지 검토하여야 할 용어들이 많다. 그동안 한국에서 좌파에 의하여 진행되었던 진지전에서 우파는 완패하였는데 그 원인은 사상전의 핵심도구인 용어전술에서 완패하였기 때문이다. 지금부터라도 주로 좌파가 때로는 우파내의 배신자들과 일부 식자층에서 만들어 놓은 잘못된 용어를 바로잡고 용어전술에서 좌파를 능가할 수 있도록 올바른 용어를 사용하도록 하여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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