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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중물] 트라우마
[마중물] 트라우마
  • 프리덤뉴스
  • 승인 2022.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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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우마]

 

 

光明時待 강하정

 

 

내남편 송경진 선생님 장례식장에서 나를 헐뜯는 사람들의 속삭임을 들었었다.

사건 이전, 내 희귀병증의 일환인 병증의 하나로 내 손톱은 걸핏하면 깨지고 갈라지고 찢겨서 몹시 아팠다.

생각해보시라.

변기 물 내리는 손잡이 잡을 때 어쩌다 손톱이 긁히거나, 머리카락에 손톱이 어쩌다 끼이거나, 옷을 입고 벗을 때 심지어 옷의 올에도 짧게 자른 손톱은 찢어져서 속살이 째져 피가 비치며 아찔한 통증과 함께 손가락부터 어깨까지 쓸 수가 없을 정도로 고통이 심했다.

내 병이 그런 병이다.

남들은 대수롭지 않게 넘길 상처에도 비명을 지를 만큼 통증을 심하게 느낀다.

이런 글을 쓰기 위해 컴퓨터 자판을 칠 때도 한 타 한 타마다 통증을 느끼며 쳐야 한다.

그런 병이라 병명도 없는 희귀병인 것이고, 국내에도 세계에도 나와 같은 병증의 환자는 드물다는 것이 소위 의학박사들의 설명이었다.

 

어쨌거나 남편 사건이 발생했을 때도 나는 그 상태였고 머리는 박박 깎은 후 까치머리로 자란 상태였다.

남편이 멘탈 붕괴상태로 집안을 돌보지 못하게 되어 내가 용을 쓰며 살림을 하려고 하다 보니 손톱이 계속 말썽을 부렸고, 고무장갑을 끼고 설거지를 하던 중에도 고무장갑 속에서 깨진 손톱 때문에 비명을 질렀던 적도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집에서 물건 스크래치 보수용으로 쓰던 검은 에나멜을 발랐었다.

내가 남편이 사망하여 장례를 치르리라 예상이라도 했을까?

 

갑작스러운 참변으로 망연자실 조문을 받던 내 귀에 생판 처음 보는 조문객들이 속닥속닥 흉보는 소리가 들려왔었다.

검은 상복에 검은 손톱이 일부 조문객의 눈에 거슬렸던 모양.

"뭐야, 깔 맞춤한 거야?"

"세상에! 아니 이 와중에 손톱을 다 발랐네?"

"검은 손톱이 다 뭐야, 불길하게!"

"저 여자가 와이프야? 송쌤이 불쌍하다! 끼 좀 부렸겠네!"

"남편 잡아 먹어놓고 매니큐어 바를 정신이 있었나, 쯧쯧!"

.

.

.

그녀들의 지각없는 언동에 그냥 확 뺨이라도 후려치고 싶은 생각이 잠시 들었지만 참았다.

누군지도 모르니까.

그리고 내 남편 장례식장에 와준 사람들이니까.

 

가장 가슴을 후벼 판 말은 "남편 잡아 먹어놓고-"였다.

왜냐하면 그와 똑같은 말을 내 멱살을 잡고 주먹으로 있는 힘껏 내 가슴을 치며 발광하던 시누이에게 벌써 들었기 때문이었다.

"언니가 오빠 잡아먹었어. 오빠 살려내! 언니가 잡아먹은 거야!"

밑도 끝도 없이, 불문곡직, 시누이는 내게 달려들어 길길이 날뛰며 패악질을 부렸고, 왜 이러냐며 말리는 동서들에게 끌려 나갔었다.

"내가 죽였어? 내가 죽으라고 했어? 너에겐 오빠이지만 내겐 남편이야!"라고 속으로 외쳤지만 어쩌겠는가?

그때 시누이에게 멱살 잡히고 맞은 일은 죽어도 못 잊을 것 같다.

 

내가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고 있던 그때, 끌려 나간 시누이는 친척, 일가들에게 세세거리며 웃고 인사를 하고 있었다.

친정 동생들이 화가 나서 뭐 저런 여자가 다 있냐고, 어디 다치지 않았느냐고 내게 묻고는 시누이에게 따지러 가야겠다고 했을 때 손사래를 치며 말렸다.

성깔 꽤 있는 동생 하나가

"언니가 무슨 잘못이 있다고 저런대? 언니가 너무 착하니까 함부로 깔보고 저러는 거 아냐! 우리 집안에도 성질 있는 사람 있는 거 좀 보여줘야겠어. 자기 오빠 장례식장에서 동생이라는 사람이 저렇게 막돼먹은 행동을 해도 돼? 이런 데서 튀어보려고 가증스러운 행동하는 거 보면 그동안 얼마나 언니를 괴롭혔을지 안 봐도 뻔하네!"라고 하며 씩씩거리며 일어서서 시누이와 대판거리라도 할 기세였는데, "제발 그러지 마. 형부 장례 중이잖아!"라고 해서 겨우 말렸다.

 

나의 현실은 그냥 힘없이 늘어져 조문객의 인사에 답례하는 일의 연속이었다.

그 소리를 들은 후로 귀에서 그 말이 쟁쟁 울리며 두통까지 생겼었는데 조문객이 그 말을 하니 가슴에 구멍이 뻥- 뚫리는 것 같았다.

 

장례를 치르는 3일 동안 나는 물도 제대로 못 먹었다.

손위 동서가 장례식장에 부탁해 누룽지를 끓여왔는데 그것마저도 못 먹고 겨우 숭늉만 조금 먹었다. 남들 앞에서 대성통곡조차 못하고 화장실에 들어가 소리죽여 울며 화장실 문고리를 붙들고 몸부림을 쳤다.

조문객들은 남편과 아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누군가에게 남편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지우고 싶어 했다. 그리고 그들에게 만만한 대상은 나였다.

그들은 남편이 사망할 당시 자고 있었다는 이유로 나를 타박했고, 남편이 그렇게 힘들어하는데도 변호사를 사지 않았다고 힐난했고, 체육 교사를 고소하지 않았다고 비난했고, 그깟 교사질, 못하게 되면 다른 거 하면 될 텐데 내가 사모님 소리 못 듣게 될까 봐 말렸을 거라고 생뚱맞은 추측까지 해댔다.

겉모습이 멀쩡하니 아프다는 말도 꾀병, 거짓말일 거라며 후벼팠다.

나는 그때 생각했었다.

장례식장에서는 그냥 조문만 하면 좋겠다, 식사는 다른 데 가서 하면 좋겠다, 자기들끼리 뭐라 떠들든 내 귀에 안 들리는 곳에서 하면 좋겠다.’

6년이 지난 지금도 그 말들이 잊히지 않고 때때로 억울한 눈물을 흘리게 한다.

그러다 이번 이태원의 떼죽음을 접하고 그때의 일이 자꾸만 반복 재생된다.

남편의 마지막 모습도 또렷하게 자꾸만 떠오른다.

 

사람들은 위로든 조문이든 그때뿐이다.

잠시 들러 안타까운 마음을 전하고 국화꽃 한 송이 영전에 바친 후로 그곳을 떠나면 다시 일상생활로 빠르게 돌아간다.

웃고, 먹고, 놀고, 잠도 잘 자겠지.

그러나 유족은, 나 같은 유족은 그러지 못한다.

분하고, 억울하고, 화가 치밀고, 애석하고, 궁금하고, 후회되고, 뭐 어떤 말로도 표현 못 할 복잡한 감정들과 추측과 회한이 뒤범벅되어 시간이 흐르는 동안 곰삭기를 기다리는 길 외엔 없다.

 

다들 던지는 정말 듣기 싫은 말!

"산 사람은 살아야지. 먹고 기운 내. 정신 똑바로 차리고."

이런 말들을, 사람들은 조문과 위로에 꼭 필요한 말이라고 생각하는지 거의 그렇게들 말한다.

그런데 내가 겪어보니 아니더라.

가장 듣기 싫고, 가장 가슴에 피멍이 드는 말이더라.

아들이 말없이 나를 안아주었을 때, 그때 비로소 나는 위안을 받고 있음을 느꼈다.

아들 품에서 펑펑 울면서 둘 다 말이 없었지만, 최고의 위안이었다.

내 등을 쓸어주는 아들의 손길은 그 어떤 말보다 내게 치료제였다.

 

지금 이태원 사망자들의 유족들은 그 어떤 말도 귀에 안 들어올 것이다.

그런 그들을 이용하려는 자들과 그들이 이용되는 것을 막으려는 자들이 11초가 아깝다고 벌이는 짓들에 진저리가 쳐진다. 소름 끼친다.

 

톨스토이의 단편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가 떠오르는 밤이다.

202210월의 끝의 참변에 대해 그대들은 무엇으로 사는가?

돈과 권력을 향한 인간의 끝없는 탐욕에 대해 강한 반감을 느끼게 하는 대한민국의 현실!

목숨을 좌판에 놓고 호가를 부르며 호객행위를 하는 장사치들!

생명 존중은 구호에 불과한 것인가!

 

남편 장례 이후로 그날의 트라우마 때문에 나는 손톱이 갈라지고 깨지고 찢겨도 다시는 에나멜을 바르지 않는다.

남편이 무척이나 그리운 밤이 지나가고 있다.

 

2022.11.04.() 오전4:33 - 光明時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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