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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論] 제5공화국을 재평가해야 하는 이유
[時論] 제5공화국을 재평가해야 하는 이유
  • 프리덤뉴스
  • 승인 2023.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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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12. 28. 대한민국 현대사 세미나 모임 강연)

5공화국을 재평가해야 하는 이유

 

김기수 (프리덤뉴스 발행인)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제5공화국에 대한 평가 자체는 매우 억압되어 있는 상황입니다. 평가 자체가 자유롭지 못하다는 뜻입니다. 최근 제5공화국을 재평가하려는 여러 시도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재평가를 시작하기 전에 5공화국이 왜 재평가되야 하지?’ 라는 문제의식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전두환 대통령 개인 대한 숭배라든지 또 아니면 지나치게 공격적이거나 지나치게 우호적이거나 이렇게 되기 쉽습니다.

5공화국은 대한민국의 근대화가, 또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체계가 어느 정도 완성된 시기이고, 또 북한과의 체제 경쟁에서 완전히 승리한 시기입니다. 그 산 증인이 북송 교포 2세도 오늘 이 자리에 와 계십니다. 5공화국 이전에는 북한이 체제에서 앞서가고 있었습니다체제의 승리라는 건 더 잘살게 되었다는 겁니다. 체제는 시스템의 문제가 아니라 먹고 살만 한가의 문제입니다.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주의 국가, 자유주의 국가로 가는 터전을 마련한 때가 5공화국입니다.

그런데 지금 일어나는 일을 보면 여기 이 자리에 와 계신 정통우파티비 청년 한진상씨 같은 경우에는 5·18을 언급했다고 해서 고발당했습니다. 5.18에 대해 무슨 말이라도 할라치면 형사고발을 당해요. 이제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권리도 없어지고 이런 상황이 되어 있습니다지금의 정치 지형으로는 5·18에 대해서는 일체 언급도 못합니다. 또 전두환 대통령께서 광주에 가서 재판관할도 없는 광주광역시에 억지로 끌려가서 재판받는 모습이라든지 이런 것들을 법조인인 제가 봤을 때는 아 이것은 도저히 용납이 안 되는 그런 상황에까지 이르렀구나라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제가 볼 때 아직도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매우 전근대적인 사고방식이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근대화에 대한 반동도 엄청 드셉니다. 근대화에 대한 반동이라는 건 한마디로 법치나 자유에 대한 몰이해입니다근대화의 시기라 할 수 있는 20세기 초반부터 20세기 말까지 대한민국에서 엄청난 근대화의 바람이 불었습니다. 20세기는 근대화의 세기였습니다. 그런데 21세기에 살고 있는 요즘 겉은 잘 사는데 오히려 반동의 물결이 20세기보다 더 심하다는 것을 제가 느낍니다.

그래서 저는 5공화국시대가 근대화의 정점에 있었지 않는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대학을 다닐 때인 1980년대를 생각해보면 영화라든가 스포츠 같이 세속적인 자유에 눈을 뜬 시대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야구만 잘 해도 먹고 살 수 있고 축구만 잘해도 성공할 수 있는 나라, 그런 토대를 만든 것이 제5공화국이라는 겁니다결국 잘 먹고 잘 사는 것이게 진정한 자유 아닐까요? 뭐 못먹고 못산다면 정치적 이념이 옳고 그르고 그 모든 게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요즘은 폴리티컬 코렉트니스(PC)가 유행 아닙니까? 정치인들마다 PC 그러니까 정치적 올바름주의라는 명분에 집착합니다.

5공화국은 정처직 올바름주의와는 조금은 거리가 멀었던 시절이었습니다. 5공화국 정부는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가장 앞선 실용주의정부였습니다. 그 시절 시절의 집권당 민주정의당(민정당), 그 민정당이 지금 국힘당보다 훨씬 효율적으로 돌아가고 국민들과의 소통도 많이 하려고 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대한민국 역사의 퇴보가 분명히 일어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그래서 제5공화국만 계속 얘기하면 공격당하기도 쉽고 우리가 왜 이 이야기를 하는지를 사람들이 잘 모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저희 같은 사람들 보고는 아 저것은 전두환 빠다.’ 뭐 이렇게 매도당하기 쉽거든요.

5공화국을 재평가해야 되는 것인가?” 하는 이 문제의식은 운동장이 기울어져 있기 때문에 바로 세워야 한다는 것과는 좀 다릅니다. 저는 그렇게 한가로운 사람이 아닙니다운동장이 기울어져 있는 것을 바로 세워주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요, 국민들에게 왜 당신들이 지금 잘못된 역사 인식에 빠지게 되었는지 알려주고 또 제5공화국이 재평가됨으로써 진짜 자유가 뭔지를 알게 해주려는 겁니다.

국민들에게 당신들의 진짜 지도자가 누구였고, 국민들을 제대로 일깨워주는 지도자가 누구였는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그런 지도자는 어떻게 했었는지, 그걸 얘기해 주려면 제5광화국을 재평가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20세기가 왜 근대화의 시대였느냐? 과거의 조선시대 관습이 타파되고 약한 정도라도 법치행정이 뿌리를 내렸습니다. 사람에게는 이름이, 땅에는 번지가 부여되었습니다. 번지가 만들어지면서 그것이 자본화되기 시작했습니다. 내 몸 내가 제공하고 월급 받아가고, 내 땅 내가 은행에 담보 잡혀서 자녀들 대학 보낼 수 있는 시대가 일제시대에 다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전에는 그런 게 없었어요 네 땅, 내 땅도 불분명했고 소유관계가 일단 불분명했습니다. 소유 관념이 확실하게 정착된 것이 일제시대였다고 생각합니다. 소유권을 법으로, 순경이라는 경찰력이 소유권을 분명히 보호해주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개인 소유권이라는 관념자체가 불분명했습니다. 하이에크의 말을 빌리자면 이것은 자유입니다. 소유가 없는 곳에 자유가 없기 때문이죠. 자유가 있으려면 재산이 보장돼야 하는 거죠. 한마디로 말하자면 개인의 재산이 법적으로 보장이 된 때가 바로 일본제국주의 시대였습니다.

대한민국이 친일청산을 제대로 하지 않아서 기회주의자가 득세한 나라라는 인식이 좌우를 막론하고 널리 퍼져있습니다. 그러나 북한의 김일성은 제국주의 시대의 모든 것을 그대로 이어받으려고 노력했습니다. 해방이후 북한에서는 일본 사람들이 귀국하는걸 잡아서 억류시키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일본인들로 하여금 해방전과 같이 공장을 그대로 돌리도록 하고 그들의 급여도 확실히 보장해주고 그래 가지고 1970년대까지 북한이 대한민국 보다 조금 더 잘살게 된 겁니다해방이후 북한이 조금 더 잘 살았다는 원천이 거기에 있는것이지 사회주의 체제의 우월성 때문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북한은 친일 청산을 아예 제대로 안 한 겁니다.

북한은 일본 제국주의 전쟁말기의 동원체제를 그대로 유지한 채, 조선시대 가부장적인 지배체를 부활시켰습니다. 그게 북한입니다. 그러나 조선시대보다 못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남한은 해방이후 약 20년간 혹독하게 배고팠습니다. 1945년부터 1965년까지 반일감정이 드세지고 남쪽에서는 일본 사람들이 다 버리고 떠났습니다. 일부 일본인들에 대한 린치도 가해졌지만 미군정은 속수무책이었습니다. 공장은 좌익들에게 장악이 되거나 멈추었기 때문에 생산이 제대로 될리도 없었습니다. 제대로 살아갈 수가 없었죠.

그런 굉장히 힘든 시기를 거치면서도 이승만 대통령은 그 시기에는 반일’(反日)을 얘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반일은 시대적 당위성이었습니다. 일본과 전쟁을 치룬 미국은 일본의 힘을 분산시키는 것을 최대의 목표로 삼았습니다. 일본의 힘을 원천을 잘라놓는 것을 미군정이 했습니다. 그래서 반일감정에 투철한 이승만 대통령에게 집권의 기회가 주어졌지 않나 이런 생각이 듭니다. 국제정치의 냉정한 현실입니다.

친일청산에 대해서 우리가 잘못 알고 있습니다. 식민지 잔재 청산만큼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혹독하게 한 나라가 대한민국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미군정이 식민잔재 청산을 너무 혹독하게 했기 때문에 해방이후 20년 이상 혹독하게 배고팠습니다. 제가 1966년생인데 그때만 해도 배고픈 시절이었습니다. 해방이후 배고픈 시절을 왜 겪었느냐? 그런 일본과의 단절, 고립이 그 원인이었습니다.

친일 청산 자체가 고립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위로는 북한에 막혀 있고, 아래로도 막혀 있고, 다 막혀 있는 거예요. 다만 대한민국이 건국되어 조선으로 다시 돌아가지 않았던 것은 이승만 대통령의 업적입니다. 하지만 그 대가로 시련을 겪은 겁니다이런 배고품의 역사를 뒤집고 새로운 역사의 물꼬를 튼 분이 바로 박정희 대통령이라고 생각합니다. 배고품의 역사가 뒤집히는 역사적 분기점은 1965년 한일회담 성사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승만 대통령은 그런 미래에 대한 씨를 뿌려놓은 분입니다. 그걸 통해서 일본 자본이 들어오고 일본과 손을 잡음으로써 먹고 사는 것이 해결이 되는 시대로 넘어갔습니다. 거기에 철저하게 반대했던 세력이 민족민주 진영의 사람들입니다.

박현채를 비롯해서 얼마 전에 돌아가신 변형윤 교수 같은 분들, 위정척사론부터 쭉 내려오는 그런 민족(그때 민족 개념도 없었지만)고립을 자초하는 그런 사상적 전통이 서울대 경제학과에 있습니다. 1965년 한일회담으로 대일경제 개방으로 가려는 것을 극렬하게 반대했습니다. 아직까지도 6·3 한일회담 반대하신 그분들의 ‘6·3동지회가 대한민국 지성계를 장악하고 있습니다. 1965년 대일 경제개방이후 5공화국까지는 박정희 대통령의 유업을 이어가는 그런 과정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이에 역사적 분절이 있었습니다. 예상하지 못한 우연한 역사적 사실, 박정희 대통령 서거라는 분절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이 분절을 이어 간 것이 저는 12.12 였다고 생각합니다.

민족민주진영이나 이승만 박정희 대통령으로 통칭되는 건국 세력과는 다르고 새로운 그야말로 한국 땅에서 배웠던 신진 군부세력이 나라를 끌고 갔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나라를 선진조국으로 끌고 가는 과정에서 철저한 반대한 세력은 민족민주진영이었습니다. 일본제국주의 시절부터 좌익 활동을 했던 세력들은 남한내에서 빨치산 활동이 불가능해지자 학생운동으로 변신하여 대학교를 거점으로 삼아서 반체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본질적으로 근대화 저항세력, 전근대세력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은 개방경제나 국제경제협력 체제로 나가지 못하고 또 시대를 읽지 못했던 거예요.

2차세계대전이 끝난 이후에 어마어마한 국제무역이 일어나지 않습니까? 미국 체제하에서 어마어마한 부()의 대열에 우리가 올라타는 계기가 1965년도부터입니다. 19세기까지만 해도 해적선 때문에 무역이라는 것을 자유롭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사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해적선 때문에 제국주의라는게 나온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미국이 워낙 세니까 전 세계 해적이 싹 없어진 때가 2차 세계대전 이후입니다. 그래서 군함도 제대로 없던 나라가 무역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왔고, 거기에 올라탄 것이 1965년이었습니다. 많이 늦었지요. 그러나 제가 볼 때는 그것이 ‘5·16이 혁명인 이유다라는 것입니다.

5·18 전자자료총서에 보면 이런 것이 공개돼 있습니다. 처음에 나온 50권 짜리가 있는데 거기에 보면 11페이지에 서울대 문리과대학 학생들의 1972년 성명서가 첫 장에 나옵니다.거기에 보면 김대중 납치사건 해명해라그 다음에 두 번째는 대일경제종속 반대라고 나옵니다. 이 내용이 5·18전자자료총서 11페이지에 적혀 있습니다. 그건 왜 나오겠습니까?

12·12는 예기치 못한 역사적 분절을 극복하고 대한민국 현대사 흐름에 연속성을 가지도록 한 사건입니다. 12. 12.에 대한 반동으로서, 또는 역사적 분절의 후유증으로 갈등이 엄청나게 일어나면서 5·18도 일어났다고 생각합니다. 전자자료 총서의 자료를 모집한 분들이 5·18의 이념이나 5·18정신을 생각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런 생각을 했기 때문에 5·18이 일어나기 8년 전의 자료를 갖다가 거기 앞에다 꽂아놓은 거죠. 5.18 거기서부터 출발했다는 겁니다.

그럼 5·18 정신은 뭐냐? ‘결국 민족민주 진영의 논리를 그대로 얘기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지 않느냐?’ 라는 겁니다. 지금 유네스코에 다 올라가 있어서 뺄 수도 없어요. 박정희 대통령, 전두환 대통령이 이루어 놓은 업적이 워낙 크니까 이걸 역사에서 지울 수가 없어요. 박정희 대통령에 대해서는 활동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박정희 대통령의 업적은 전두환 대통령이 없었으면, 12· 12 사태가 없었으면 완전히 뭉개졌을 것이고, 그때 당시에 김영삼 대통령이 민주당에서 제일 유력했잖아요. 김영삼 대통령이 집권을 그 당시에 1980년도에 했더라면 아마 경부고속도로도 다시 없어졌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대일관계도 전부 단절이 되면서 우리가 고립경제로 가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랬다면 박정희 대통령이 무모한 독재자로 남았을 겁니다. 그래서 전두환 대통령이야말로 박정희를 박정희답게 만든 사람이고, 그렇기 때문에 박정희 대통령만 이야기하지는 말자는 것입니다.

박정희 아카데미의 커리큘럼을 보니까 5공화국이 빠졌더라구요. 그래서 저는 1차 적인 올해 목표는 5공을 재평가하는 무언가를 우리가 만들어서 박정희 대통령을 위해 활동하는 사람들에게도 같이 가야 된다라고 얘기를 하기 위해서 오늘 이 장소를 빌려 가지고 하게 된 겁니다하여간 저는 이런 취지에서 ‘5공 재평가 없이는 안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이 자유주의국가로 가야 됩니다. 그런데 인간의 세속적 자유 즉 개인의 욕망을 충족할 자유가 진짜 자유다라는 것을 우리한테 몸으로 실천해서 자유를 느끼게 해 준 분이 전두환 대통령이라는 말씀을 한번 더 드리고 싶습니다박정희 대통령도 마찬가지입니다. ‘잘 먹고 잘 살자’, ‘새마을운동이런 것들이 진짜 자유를 국민들에게 준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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