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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중물] 고백
[마중물] 고백
  • 프리덤뉴스
  • 승인 2023.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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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

梅山 姜賀晶

 

그는 내게 집 같은 존재였다.

그는 서까래였고 주춧돌이었으며 대문이었다.

그런 그가 누명을 쓰고 서럽게 울었을 때 대문이 박살났고, 그가 괴롭힘을 당하며 식음을 전폐했을 때 서까래가 무너져내렸으며, 그가 타인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놓았을 때 마침내 주춧돌이 파헤쳐졌다.

내 집은 무너졌다.

그가 세상을 버린 날부터 나는 황량한 벌판에 내동댕이쳐져 미친 듯 허물어진 집의 잔재를 끌어모으고 다시 일으켜 세워보려고 몸부림을 쳤다.

그러나 겨우 서까래 한 장, 조각난 대문짝을 찾아내어 세우려 해봤지만 곧추서지 않는 대문짝과 기둥 없이 올릴 수 없는 서까래는 피눈물과 함께 다시 쓰러져버렸다.

주춧돌 없이는 바닥을 다질 수 없음에 나는 가슴을 쳐야 했다.

 

사람들은 비웃었다.

죽은 사람은 말이 없지.”

나는 귀신이라도 부르고 싶었다.

접신이라도 하고 싶었다.

정말 귀신이 있다면, 정말 신이 있다면 그 무도한 무리가 번창하는 이 지옥을 왜 외면하는지 원망스러웠고 의심스러웠다.

남의 애간장 타는 줄도 모르는 자들이 내지르는 칼과 같고 불과 같은 말에 수도 없이 찔리고 데이면서 이런 더러운 세상을 먼저 놓아버린 그가 부러울 지경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홀로 남은 상한 심장은 점점 들끓는 용암이 되어갔다.

애초에 희귀병이라는 거추장스러운 혹을 달고 있는 몸이니 차라리 부패한 이 세상을 나도 등져봄이 어떨까도 생각할 정도로 마음이 피폐해져만 가는데 길은 도통 보이지 않았다.

그들을 원망하고 미워하고 저주하고 분노할수록 내 몸과 마음만 거침없이 상해갔다.

 

나는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고 그분을 섬기며 스스로 그분의 자녀요, 나팔수라고 청하면서 살아왔다.

그러니 내 모든 간절함은 돌고 돌아도 결국 그분에게 가 닿곤 했다.

제발, 남편의 억울함을 신원해주시어 내 억울함도 해소되게 해주세요.’

한 번 기도하면 들으신 줄로 알고 이루어질 것으로 믿고 중언부언하지 않겠다 스스로 다짐했었다.

그런데 참기 어려울 만큼 마음이 헤집어지면 나는 다시 아버지를 찾고 부르짖곤 했다.

그가 귀의한 곳 극락정토에서는 어떨까?

그가 무사히 극락에 갔다고 유골함을 봉안한 절의 주지는 내게 말했었다.

나는 그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

하나님께 양해를 구하고 그를 위해 상복을 입었으며, 3일 장과 세이레를 지냈고, 그의 극락왕생을 위해 천도제를 지냈으며, 3년 제사를 다 모신 후에야 탈상하였다.

3년 사이 그는 내 꿈에 몇 차례 나타났었고, 자식의 꿈에도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이후 그는 꿈에서마저 떠나버렸다.

주지의 말에 잠시 안도했지만 결국 극락이란 곳으로 가버렸다는 그가 가슴 아리게 야속했다.

곁에서 나와 자식을 지켜주지 왜 가버렸나 싶기도 했다.

그리고 못내 서운했고 화도 났다.

자신의 무죄를 밝히려고 안간힘을 쓰는 나를 재활용도 못할 쓰레기처럼 버리고 가버렸다는 것인가?

저 무도한 무리들에 맞서 진실을 밝히고자 애쓰는 내게 귀신의 힘이라도 보태주고 싶지는 않았단 말인가?

억지 생떼처럼 이미 없는 그를 향해 그립다 불러보고 주절주절 한탄도 하고 그래왔다.

그렇게 벌써 일곱 해째, 몸은 갈수록 쇠약해지고 통증은 갈수록 늘어만 간다.

어떻게든 알려야 한다며 아픈 손으로 열심히 타이핑해서 세상에 보이려던 내 쓰라린 외침도 외면당한지 꽤 되었다.

 

이 나라에 법과 정의 따위는 없다.

그 법과 정의를 구현하고자 세워진 사법기관과 행정기관과 공무원 사회는 이미 부패하고 타락하고 곪아 썩은 환부가 악성 곰팡이처럼 퍼진 것이 이 나라의 실체다.

그러니 나와 같은 힘없고, 권세도 없고, 가진 것 없는 개인이 공권력이 휘두른 칼에 무시로 베이고 찔려도 어디 한 곳 하소연할 데도 없고 오히려 더한 압박과 괴롭힘과 위협만 돌아올 뿐이다.

공권력에 찔리고 베이고 죽임을 당해 분노하다가, 고소라는 제도가 있으니 국민은 희망을 가져보라 하기에 고소했더니, 이번엔 그 법과 정의를 위해 존재한다는 곳에서 법 망치로 두들겨 팼다. 법복 입은 젊디젊은 여자들이 가증스러운 판결이라는 이름으로 피투성이 피해자인 내게 또다시 법 망치로 가격을 했다. 목숨까지 잃은 그를 부관참시까지 했다.

 

언론이라는 우물에는 이미 세균과 독이 가득해서 그 우물물을 마신 국민이라는 이름의 낯선 이들이 좀비 떼처럼 내게 손가락질을 하고, 흡혈귀처럼 날카로운 이를 드러내어 욕설을 하고, 시민단체라는 너울을 쓰고 온갖 패설을 늘어놓으며 나를 거짓말쟁이라 일컬었다.

적반하장!

그들의 위선과 가식과 사기 놀음에 나 같은 개인은 그저 희생양에 불과했다.

우울이라 이름하는 것이 극에 달했을 즈음, 참고 참아오던 말이 기어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하나님, 아버지, 언제까지 참아야 하는 것인가요? 오래 참으시는 아버지처럼 그렇게 끝까지 참아야 하는 것인가요? 아버지의 공의는 어디 있나요? 차라리 나를 죽여주시면 어떨까요? 몸도 마음도 너무 아파서 견디기 힘드네요. 법도 공의도 사랑도 없는 이 지옥에서 차라리 하루속히 구원해주세요.”

아니다.

입 밖으로 튀어나오는 것을 차마 말이란 것으로 하지는 못했다.

그저 꺼이꺼이- 울음소리인지 웃음소리인지 분간하지 못할 소리를 내며 가슴이 터지게 속에서 외치고 있었다.

오목가슴 언저리가 타들어 가는 듯 조여오며, 심장이 녹는 듯 숨이 멎을 듯 호흡이 불안정해지며 그렇게 머리가 뜨끈하게 열이 오르도록 속으로, 속으로만 절규를 했다.

그러나 그뿐, 결국은 한숨이 되어 터져 나왔다.

그래.

나는 내게 남은 시간을 죽이며 죽고 또 죽는다.

너희가 산다고 말하는 그때 나는 죽고 있다.

너희는 너희 악업을 계속 쌓아라.

눈으로 짓는 죄, 입으로 짓는 죄, 생각으로 짓는 죄, 마음으로 짓는 죄로 너희가 즐기며 산다는 동안 나는 구차한 목숨을 계속 죽이며 삶을 이어간다.

내게 남은 시간이 얼마인지 모르지만, 마지막 숨을 거둘 때까지 나는 계속 죽을 것이다.

그리하며 내게 티끌만큼이라도 붙어있던 모든 서러움이 가시고 인연과 미련에 매인 모든 사슬이 끊기면 가난한 내 영혼이 작은 바람에도 홀홀 날아가는 씨앗처럼 아버지 품으로 날아갈 그 날이 오겠지.

세상 불법과 세상의 부도덕과 세상의 패륜과 세상의 모든 악으로부터 진정한 자유를 얻게 되겠지.

그때 비로소 나는 세상에서 내게 집이 되어준 인연으로부터도 자유로워지고 진정한 내 집으로 돌아가겠지.

그래.

나는 이제 무너진 세상 집에 연연하지 않으련다.

지극히 가난한 영혼으로 돌아갈 내 아버지 집은 세상이 견줄 수 없을 포근한 안식처이니.

더 이상 눈물도, 고통도, 쥐어짜는 가슴도 지니고 있을 필요 없는 그곳을 향해, 나는 지금도 이를 꽉 물고 시간을 죽인다.

내 시계의 초침이 재깍재깍 60을 세고 돌고, 또다시 분침이 60을 세고 돌고, 딸깍딸깍 시침이 열둘을 두 번 세고 돌면 내 영혼의 무게는 그 반대 방향으로 계속 돌아 가벼워질 테니.

내가 가벼워지는 동안 너희는 시계와 같은 방향으로 돌며 더욱 무거워지거라.

날기는커녕 까치발도 짚지 못할 만큼, 서기는커녕 주저앉을 만큼, 앉기는커녕 엎드려 구를 만큼 무거워지거라.

그게 내 소원이라면 소원이려나.

2023.02.01.() 오후 2:24 도피처 없는 세상에 절망하여 긴 탄식으로.

光明時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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