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07 22:52 (일)
우리 대학의 인문사회과학을 살리려면
우리 대학의 인문사회과학을 살리려면
  • 프리덤뉴스
  • 승인 2023.02.1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대학간 경쟁이 활성화되지 않으면 무슨 짓을 해도 교수의 질을 높일 수 없다.

교육부는 이런 실정을 뻔히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교육부가 온갖 수단을 부리면서 대학의 자율성을 무시하는 데에는 물론 그만한 배경이 있다.

남 잘 되는 꼴을 못보는 우리 사회의 좌파 분위가 바로 그 것이다.

르상티망이  한국의 대학교육을 망치는 주범이다. 그리고 그 르상티망을 먹고 사는 게 교육부 관료들이다.

대학을 무슨 신성한 상아탑 같은 걸로 여기는 한 시장친화적 대학개혁은 요원하다.

3천억을 전액 인건비로 전환하여 공부에 한이 맺힌 박사들을 교수로 많이 뽑아 괜찮은 대학에 배치하면  다들 알아서 죽어라 열심히 연구할 것이다.

우리 대학의 인문사회과학을 살리려면

 

최진덕(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한국대학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인력도 아니고 자금도 아닌 지적 전통의 부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요즘 들어 많이 하게 된다. 희랍 로마 중세 근대로 이어지는 수천년의 지적 전통이 유럽과 미국 대학을 지탱해주고 있는데 우리에겐 그런 전통이 없다. 그래서 돈을 아무리 때려부어본들 힘들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는 너무 근본적인 문제라서 일조일석에 고칠 방법은 없다는 것이다.

미국대학이 이차대전 후 약진을 거듭하다가 요새는 유럽까지 능가하게 된 결정적 요인은 시장수요에 맞게 대학을 바꾸었기 때문이다. 유럽의 대학들이 대개 국립인 반면 미국에서는 정부지원을 받지 않는 일류사립대학들이 약진을 주도했다. 필자는 이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버드, 예일 등 일류사립대학들이 해마다 머리가 터지도록 경쟁을 해서 미국을 선도하고 더 나아가 세계문명을 선도하고 있다. 

그래서 한국대학이 개선되려면 정부의 간섭을 이제는 없애야 한다. 교육부가 없어지면 대학교육을 포함 모든 교육이 제대로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교육도 기본적으로는 시장기능에 맡기자는 것이다. 단 시장기능으로 안되는 부분은 미국처럼 주립대학으로 해소를 하면 된다. 

아마 유럽대학의 장점을 많이 본 사람이라면 시장친화적인 위와 같은 대학정책에는 찬성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미국대학이 유럽대학을 넘어 약진하는 모습을 보고 나서 한국대학의 난맥상을 본다면 시장친화적 대학정책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하지 않을 수 없다. 

시장친화적 대학정책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대학들이 시장에서 치열하게 경쟁하게 만드는 것이다. 우수학생과 우수교수 모집을 위해, 탁월한 연구성과를 위해, 졸업생의 사회진출을 위해 대학들이 머리가 터지도록 싸우도록 맡겨두자는 것이다.

나아가서 대학이 어떤 학생을 뽑건 간에 교육부가 간섭을 해서는 안된다. 돈많은 집 자식을 뽑건 얼굴 잘 생긴 얘들을 뽑건 지들 알아서 하라는 것이다.  대학이 어떤 학과를 설치하건 혹은 어떤 학과를 폐지하건, 또 정원을 몇명으로 하건 교육부가 규제를 하지 말아야 된다.  교육부가 어떤 학과가 필요하고 몇명의 학생이 필요한지에 대해 대학보다 더 잘 안다는 보장이 어디에도 없다. 

이렇게 교육을 시장에 맡겨 두면 10년 내로 한국에서 세계최고대학이 저절로 만들어질 수 있다. 세계최고의 교육열을 자랑하는 강남의 부잣집 엄마들이 모여 결심만 하면 세계 최고의 유치원, 세계 최고의 초등학교, 세계 최고의 중고등학교는 물론이고 세계 최고의 대학까지 만들어내고도 남을 일이다. 모 재벌의 자식들이 다녔다는 미국의 일류 칼리지 같은 거 하나쯤은 전세계로부터 최고의 교수들을 모셔와서 몇년이면 만들어낼 수 있다. 

가령 연고대에 기부금입학만 허용해도 연고대는 금새 세계랭킹 50위 안에 들어가는 세계적 명문대학이 될 수 있다. 연고대는 서울대를 따라잡는 게 오랜 숙원이다. 돈이 있으면 이 숙원을 바로 이룰수가 있는 것이다. 만약 연고대가 서울대를 능가할 때가되면 한국대학교육의 질적 비약이 시작될 것이다. 더구나 연고대가 아니라 지방의 어느 대학이 서울대를 능가해주면 더욱 멋질 것이다. 바로 이런 것이 한국의 교육열을 가장 멋지게 활용하는 방법이 아니겠는가?

내 자식을 남의 자식보다 더 잘 교육시키고 싶어하는 부모들의 교육열을 왜 나쁜 거라고 생각하게 만드는가? 부모 마음이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원래 다 그런건데 우리는 너무 위선적이다.

논팔고 소팔아 자식을 대학에 보낸 우리 부모들의 교육열이야말로 한국을 여기까지 올라오게 만든 원동력이었다. 지금은 그 교육열이 명문대 입시경쟁에만 비생산적으로 소모되고 있다는게 문제의 핵심이다. 그 교육열을 생산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이 바로 대학교육개혁의 미래를 교육시장에 맡기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교육부는 한국의 교육열을 멋지게 활용할 수 없도록 끈질기게 막고 있다. 그래서 한국의 대학서열은 해방후 지금까지 요지부동이다. 경쟁이 없으니 대학마다 교수 뽑을 때 자기 대학출신으로만 가득 채운다. 서울대 연고대 등 명문대에서의 교수임용을 지켜보면 자기 대학 출신 중에도 일류은 가급적 배제하고 오히려 이류나 삼류로만 채우는게 다반사다. 입으로는 세계화를 외치면서 맨날 지닭 지잡아먹기만 한다.

대학의 인문사회계 학생들을 보고 있노라면 불쌍하기 짝이 없다.  요즘 대학에 들어오는 학생들은 단군 이래 가장 똑똑한 학생인데 교수의 수준은 예전보다 별로 나아진 게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인문사회계 학생들이 절망한다. 그렇게 절망한 학생들은 대다수가 결국 좌경화의 길을 걷고 만다. 

서울대나 연고대쯤 되면 이제는 세계를 상대로 교수모집공고를 내고 교수의 절반 이상을 세계최고 수준의 외국인 교수들로 채워야 한다. 하지만 실상은 자기 대학 출신들 중에서도 일류가 아닌 교수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기존 교수들이 말 잘듣는 고분고분한 제자들을 신임교수로 뽑는 게 관행이기 때문이다.

대학에는 이런 관행을 당연한 줄로 아는 양심불량 혹은 멍청이들이 정말 많다. 다시 생각해보면 이거 부정부패 아닙니까? 썩어도 더럽게 썩은 거 아닙니까? 라고 물어야 할 지경이다. 만약 기업에서 대학교수가 자기 제자 데려오듯 사람을 쓴다면 그 기업은 안 망하고 베길 수 없을 것이다. 

미국의 일류대학은 자기 대학 출신이라 해서 뽑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러다가는 대학간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울대고 연고대고 간에 누굴 교수로 뽑건 서열에는 해방후 지금까지 아무 변화가 없다. 그래서 안심하고 아무나 뽑는다.

그런 과정을 거쳐 대학에 자리를 잡은 인문학 교수들은 인문학의 위기를 말하면서 인문학에 대한 더 많은 지원을 요구한다. 그러나 인문학 교수들이 받는 대접을 보면 아마 한국만큼 인문학을 대접하는 나라가 없지 않나 싶다. 이런 세태를 들여다 보노라면 대학에 인문학이 왜 있어야 하는지 한심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대학간 경쟁이 활성화되지 않으면 무슨 짓을 해도 교수의 질을 높일 수 없다. 교육부는 이런 실정을 뻔히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교육부가 온갖 수단을 부리면서 대학의 자율성을 무시하는 데에는 물론 그만한 배경이 있다. 남 잘 되는 꼴을 못보는 우리 사회의 좌파 분위가 바로 그 것이다.

르상티망이  한국의 대학교육을 망치는 주범이다. 그리고 그 르상티망을 먹고 사는 게 교육부 관료들이다. 좌파는 교육부 관료들을 믿고 마음대로 설치면서 대학의 발전을 원천적으로 방해한다.

국내에서 학술연구에만 1년에 100조를 쓰고 그중 3천억 정도가 인문사회계 연구비라고 한다. 필자가 보기에는 3천억도 적은 돈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엄청난 돈이다. 이 돈만 효율적으로 쓰더라도 인문사회학계의 발전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 돈을 연구비로 쓰면 돈은 대부분 공중에 분해되어 없어진다. 연구비가 많아야 연구가 잘 되는 것도 아니다.

인문학의 경우 한국교수들이 미국교수들보다 연구비가 더 많다. 그런데 연구비를 많이 받으니 1년에 논문을 여러 편씩 써야 한다. 그러다 보면 모든 논문이 부실화된다. 연구비과잉으로 인한 논문의 부실화는 한국의 인문학교수들이 현재 겪고 있는 현실이다. 인문학에 대한 연구비는 전액 인건비로 쓰여져서 연구후속인력의 확보에 직접 기여해야 한다. 

인문사회계 연구비 3천억원 전액은 교수채용을 위한 인건비가 되야 한다. 초임교수 연봉을 5천만원으로 잡으면 3천억으로 매년 최대 6천명을 채용할 수 있다. 인문사회과학은 특별한 경우 외에는 밥만 먹으면 연구할 수 있다. 도서관과 인터넷을 활용하고 연구비가 필요하면 각자 재주껏 확보하면 되는 것이다. 

한편으로 한국의 교수연봉도 너무 높다. 교수봉급은 대학마다 기밀사항이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필자의 짐작으로는 아마 연고대 정도면 정년무렵 1억 2천 이상이 될 것이다.  미국과는 달리 한국대학에서는 모든 교수가 의과대학 말고는 꼭 같이 받는다. 한국의 대학교수사회만큼 평등한 사회도 없다. 그러니 한국의 인문사회과학교수는 미국이나 유럽 혹은 일본의 인문사회과학교수에 비해 실질적으로 훨씬 더 많은 연봉을 받고 있는 셈이다. 

우리의 국민소득을 감안하고 학문적 역량과 실질적 기여를 고려한다면 연봉을 절반 이하로 줄여도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 대신 정년제도를 신축적으로 운영하여 우수한 교수에 대해서는 정년을 연장해주는 것이다. 그리고 연구실도 1인1실을 고집할 이유가 없다. 2인1실, 3인1실도 무방하다. 독일대학과 비슷하게 아주 탁월한 학자 한 사람에게만 정식 교수의 타이틀을 주고 나머지는 모두 시간강사로 돌리는 것도 방법이다. 너무 많은 교수에게 너무 많은 봉급을 주고 방 하나씩까지 주다보니 등록금을 내는 학부모의 등이 휘어진다. 

전세계에서 한국의 인문사회과학교수의 수준은 그다지 높은 편이 못되는데 대접은 세계 최고수준이다. 필자는 교수가 되고 나서 대접이 너무 좋아 당황을 했을 정도였다. 교수가 되기 바로 전날까지도 사람 대접을 못받다가 교수가 되고나니 하루 아침에 제 실력 이상으로 대접을 해주니 필자로서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학력보다는 학벌을 중시하고 학자로서의 자질과 실력보다는 교수냐 아니냐만 따지는 것을 보면 한국의 대학이 시장 위에 군림하고 있는 것이 맞다. 한국의 대학은 시장의 눈으로 보면 오만하기 짝이 없다. 한국의 대학을 시장 속에 다시 자리잡게 만드는 것이 진정한 개혁의 시작이다. 

하지만 대학을 무슨 신성한 상아탑 같은 걸로 여기는 한 시장친화적 대학개혁은 요원하다. 우선 당장 필요한 개혁이 하나 있다. 제 후배, 제 학생들이 박사학위를 받고도 자리가 없어 배를 굶고 있다. 연구재단의 3천억이 연구비 명목으로 기존 교수들의 수중으로 들어가 자기들 마음대로 나눠가지는 걸 보면 속이 터질 때가 많다. 그 3천억을 전액 인건비로 전환하여 공부에 한이 맺힌 박사들을 교수로 많이 뽑아 괜찮은 대학에 배치하면  다들 알아서 죽어라 열심히 연구할 것이다.

현재로서는 이 것이 우리 대학의 인문사회과학을 살리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