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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학 칼럼] 적국의 희생자를 기리는 일본의 전통
[김문학 칼럼] 적국의 희생자를 기리는 일본의 전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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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3.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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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국의 희생자를 기리는 일본의 전통

 

김문학(문평비평가, 비교문화학자)

 

청일갑오전쟁때의 일이다. 18949월 일본군과 청나라의 최강 실력을 자랑하는 북양함대가 개전 이후 한달 만에 황해해전에서 대패했다그리고 18952월 위해위 방어전에서 북양함대는 전멸당한다. 함대를 인솔한 제독 정여창(1836-1895)을 향해 일본의 연합함대 사령관 이토스케유키(1843-1914)가 항복을 권유했다. 그러나 정여창은 적국에 향한 항복을 거절하고 독약을 먹고 자살한다. 지금 중국 교과서에서도 정여창의 용감한 죽음을 칭찬하여 애국 영웅으로 기술하고 있다.

당시 일본 정부는 정씨의 절개 굳은 죽음에 감동하여 정여창을 후히 장사 지내야한다고 청나라 정부에 제안하였으나 그러나 청정부는 무시하고 말았다. 그러자 위해위를 점령한 일본인 유지들이 자금을 내어 장사비를 세워 정여창의 희생을 기렸다.

참으로 야릇하고 불가사의한 행동이다. 왜 일본인은 적국의 희생자에 대해서도 위령비를 세워가면서 기려주는 것일까? 같은 행위는 또 있다. 1904-05년에 걸친 일러전쟁에서 전쟁터가 된 여순 계관산에 전사한 러시아 소장을 기리는 석비가 세워진다. 이것도 일본군이 세워준 것이다. 사료에 따르면 계관산 점령 공방선에서 일본군은 860, 러시아군은 300명이 희생되었다. 일본은 아군의 위령비 뿐만아니라 적국 병사라도 희생자에게는 위령기념비를 세워주는 관습이 있다.

전쟁에서의 적군과 우군 모두의 전사자를 위령해주는 원친평등(怨親平等)사상이 고대로부터 일본에 전통문화로서 면면히 전해 내려왔다가장 오래된 기록은 1천 년 전 일본기략”(헤이안 후기)에 기록되어 있다. 다이라노마사가도라 후지와라 소미모토라는 역적이 있었는데 나라에서 이들을 토벌하였다. 역사상 이를 승평천경의 난이라 청하는데 당시 주작 천왕은 947년에 이 토벌전역에서 전사한 적군 아군 쌍방의 혼령을 연력사에다 모시 천명의 승려가 모여서 공양을 했다.

당시 공양의 취지문에는 관군이든 역당이든 죽으면 다 우리 나라 사람이니 원한과 친근을 초월하여 평등하게 위령해야 한다고 씌여져 있었다이처럼 적아쌍방의 경계를 넘어서 죽은 자를 기리는 사상전통은 그 후 국내의 전역이나 외국과의 전쟁에서도 일본의 전통으로 지속되어 왔다.

원나라의 원구가 일본을 습격했을 때도 1274년과 1281년에 원각사(圓覺寺)를 지어 죽은 10만읜 원군을 위해 천개의 지장보살을 만들어 봉납했다. 원각사 개산승 조원스님의 어록 중에는 "두 번에 걸친 아군과 원군의 전사와 수사(水死)로 죽어 만상이 다 혼으로 되었으니 유령하노라"라고 기술돼있다. 물론 여기서 원군은 몽골군은 가리킨다.

이런 원친평등사상은 중국이나 한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어추구니 없다고 생각 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유교사상을 근간으로 일본인과 지극히 대조적인 사상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즉 그것은 적아는 불구대천이다는 행동원리이다. <예기 곡례 상> 에 불구대천이란 말이 등장하는데 원한이 깊은 적과는 같이 한 하늘아래서 공존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꼭 복수하거나 어느 한쪽을 사라지게 하는 것이 보통이다.

이질된 타자와 적 또 자신의 생명, 이익에 해치고자 한 적의 영혼을 용인하고 기린다는 그런 발상자체가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오늘도 우리는 물에 빠진 개는 통타(痛打)한다."는 사고가 편중되어 있다.  그리고 적의 무덤을 파헤치고도 성에 차지 않아 시체에 채찍으로 매질하는 변시 문화가 오늘도 우리의 뇌리에 남아 있지 않은가.

일본인의 독특한 문화습독은 경이롭다. '죽은 원수는 같은 인간의 영혼으로 공유해야 한다'고 그들은 생각하고 있다. 물론 불교적 원친평등사상에서 유래되지만 일본인의 정신구조에 깊숙이 정착해 있었다임진왜란때 풍신수길이 조선을 침략했을 때 일본수군의 수 차례나 격파한 민족 영웅 이순신을 모르는 자는 없을 것이다. 그는 조선의 영웅지만 일본에게는 적장이다. 그러나 일본 해군은 이순신에 대해 적아의 원념을 넘어서 높이 평가하고 있다. 일로전쟁 당시 경산남도의 진해 요새에서 일본 해군은 이순신의 진혼제를 거행했다.

이런 사실은 아마 우리가 처음 접하는 역사적 사실일 것이다.  사뭇 놀랍고 불가사의하다. 풍신수길의 조선침략전쟁 때는 일본군은 각지에서 조선병사의 시신을 묻어주고 제사를 지내주었다. 당시 조선정부의 요직에 있었던 유성룡의 <징비록>에도 이런 사실이 기록돼 있다. 전라도에서 일본군에 의해 참 변응정 등 무장이 전사하였다. 이에 대해 유성룡은 일본군은 웅령의 전사자의 시신을 모아서 길셮을 묻어 주었고 그 위 표말을 세우고 弔朝鮮忠肝義胆(조조선충간의단) 이라 써놓았다고 기술했다그뿐만 아니라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에 대해서도 그들에게는 적장이고 테러리스트였지만 여순감옥의 간수로 있던 치바토시치는 안중근을 숭앙했으며 그뒤 죽을때까지 안중근의 영정과 유물을 불단에 놓고 제사를 지냈다

필자의 문우이며 현재 재일중국인 저널리스트로 활양중인 장석씨의 학술조사에 따르면 전면 항일전쟁의 8년 동안 일본의 아사히신문에 게제된 기사 중에는 일본군이 전사한 중국군에 대해 죽음을 추도하는 기사가 16편이나 된다고 한다. 일본에는 지금도 인간 뿐만 아니라 동물, 생물을 기리는 공양총 유령비가 무수히도 많다, 고치현에는 물고기, 식칼, 젓가락을 공양하는 무덤도 있다. 오카야마에는 소고비 무덤이 있다. 인간을 위해 죽은 물고기나 소를 기리는 전통이다. “초목국토석개성불이라는 자연관 영혼관에 일본인 의식구조의 큰 특징이기도 하다. 야스쿠니신사 역시 이런 죽으면 누구나 부처로 된다는 전통 문화에 의해 건설돼 있다고 이해 하는 것이 어떻까?

정치와 원한은 넘어 그 속에는 일본인의 원친평등의 문화가 베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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