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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학 칼럼] 조선망국은 왜 스스로 막지 못했나
[김문학 칼럼] 조선망국은 왜 스스로 막지 못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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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3.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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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망국은 왜 스스로 막지 못했나

 

김문학(문평비평가, 비교문화학자)

 

이 제목을 써놓고 조선민족의 후예로서 필자는 아픈 가슴을 금할길 없었다. 사실 이 제목으로 써야할 내용은 단행본 한권의 분량이 넘게 백여 년 전 조선반도와 일본의 연결성에 대해 종횡으로 서술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한국에서는 지난 역사를 관찰하거나 해석할 때 민족주의 사관의 영향 탓인지 조선의 전통사회의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해석하고 반대로 일본의 통치 특징에 대해서는 모두 부정적, 악의 극치로 평가 절하시키는 경향이 강하다. 더 심각한 것은 이런 태도가 우리에겐 하도 자연스러워서 그 태도에 의한 인식이 틀리다는 것을 입증하는 역사적 사상이나 증거들이 있어도 우리는 눈이 있어도 태산을 못보다는 말과 같이 그것들을 보지 못하며 아예 보려고도 하지 않는다.

한국의 국사교과서에서도 일본에 의한 조선망국과 통치시대는 일종의 극악무도의 시공간이다. 모든 것을 일본의 탓으로 돌려서 평화롭고 행복하고 아른다운 조선이 무자비하게 짓밟혔다고 기술한다. 그러나 정작 주체인 자기반성 즉 왜 조선망국은 우리 스스로가 막지 못했는가?”에 대한 성찰은 없다. 오로지 일본 규탄으로 모든 역사적 사실을 편향시킨다.

필자가 역사를 연구하면서 발견한 것은 (1) 조선의 망국을 일본에만 탓하는 것은 타당성이 없고 (2) 사실 우리 조선민족 내부에서도 조선의 해체를 지향하고 새로운 근대국가를 설립하자는 노력이 있었고 (3) 조선 왕조 내부에 이미 망국의 주요 요서들을 내포하고 있었는 점이다.  

따라서 일본은 조선 왕조의 멸망을 시간적으로 앞당겼을 뿐 매우 독립적이고 튼튼한 나라를 붕괴시킨 것은 아니다. 실질상 조선 왕조는 부패하고 열악하여 우리가 상상으로 여길만큼 좋은 시대는 아니었다좀 더 알기 쉽게 비교를 통해서 설명해보자. 청조 왕조가 망하고 중화민국이 성립되듯이 청왕조가 붕괴되고 근대국가인 중화민국이 이루어진 것은 누구나가 인정하는 진보이며 역사의 발전이다.

서양문명의 압력하에 동아시아에서 오래동안 존재해온 천하체제가 붕괴하기 시작했는데 청왕조의 붕괴와 같이 조선왕조의 붕괴 역시 지극히 자연스러운 역사의 발전단계이다청국이 망한 뒤 중국은 혁명가들의 노력으로 민국을 세워 공화, 헌정을 지향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조선은 새로운 문명환경 적응에 노력을 실패했고 좌절함에 따라 결과적으로 일본식 모텔을 선택했고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되고 말았다.

새로운 문명환경적응에 실패, 좌절했다는 말의 합의는 사뭇 중대하다필자는 그 역시 우리 민족 스스로 내부 분쟁, 소모전에 의해 스스로 무산시켰다고 역사를 통해 재발견하게 되었다. 아마 일본이 아닌 우리 민족 자체로 조선을 멸망시키고 청나라에서 중화민국 같은 유형의 근대 국가를 수립했다면 우리는 조선 망국을 덜 슬퍼했을 것이다그런데 문제는 조선 망국과 함께 전개되는 일본의 통치 때문에 우리는 무조건 외래민족을 적대시하고 민족의 기재를 세우려는 민족주의로 편파되었다. 민족주의는 때로는 엄청난 편협과 증오와 왜곡을 낳는 장본인이 된다. 민족주의의 편향에서 벗어서 냉철히 조선 말기와 일본의 관여를 살피면 1884년의 갑신정변 1984년의 갑오개혁 1905년의 을사조약 그리고 1910년의 한국병합은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조선말기의 외국인이 관찰한 기록을 보면 국왕의 외척에 의한 세도정치가 극에 달했고, 부패와 매관매직으로 정치기구가 문란했으며, 한편 노비제도는 엄격했다. 천태받던 천민, 재혼할 수 없는 여인, 차별당한 불교의 승려는 숨을 쉬고 살 수 없었다. 전통적 사회체제의 노후화는 점진적 개혁으로는 체제가 소생활 가망이 거의 없었으며 개화에 성공한 일본이 조선 개혁의 모범이 되었던 것이다. 소설가 복거일은 '조선은 동정한 영국의 저명한 저널리스트 메켄지조차도 긍정한 관찰자라면 누구나 조선 독립의 상실은 주로 조선의 구정권의 부패와 허약 탓임을 부인할 수 없다' 고 단언하고 있다.

조선 정부에 대한 실망한 나머지 두뇌 명석하고 국제적 시야가 넓은 조선의 엘리트들은 일본에 눈을 돌리고 일본을 조선 개혁의 첨병으로 삼았다. 한마디로 스스로 일본을 선택했던 것이다. 조선 망국은 이렇게 일본을 지향한 조선인과 조선을 러시아 등 서양세력의 침략을 방어하기 위한 진영으로 삼은 일본의 협력관계로 이루어졌다고 해야 할 것이다.

김완섭은 '조선반도에 살고 있는 인민들의 입장에서 보면 일본은 조선왕조 대신 새로 나타난 통치자였다. 대부분 어렵고 가혹한 삶을 살던 인민들은 조선 왕조는 소멸되어도 좋은 존재였으나 조선왕조의 권력을 유지하고자 한 세력이 주도한 개혁에는 저항했다. 이에 대해 개혁자들은 일본과 협력하여 조선왕조를 무너뜨리고 근대화의 길을 택했던 것이다.'라고 했다.

조선왕조의 멸망은 조선왕조 내부에 원인이 있었으며 일본은 조선왕조 멸망에 큰 죄가 없다. 일본 통치 아래 조선인은 근대화의 수혜자였음은 역사가 잘 실중해주고 있다. 이런 관점으로 근대 조선을 재성찰하는 계기를 마련했으면 좋겠다고 필자는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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