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 전문과 역사적 사실
김태식(전 주독일국방무관)
대한민국 헌법 전문이 어떤 모습인지를 알고 싶으면 외국의 헌법 전문과 비교하면 쉽게 알 수 있다. 헌법 전문은 책의 서문처럼 헌법의 맨 앞에 들어가는 내용으로서 각 국가는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를 헌법 전문에 기술한다. 어떤 나라는 간결하고 짧게 기술했고 어떤 나라는 역사적 사실을 포함해서 장황하게 기술했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일수록 헌법 전문이 간결하고 역사적 사실을 포함하지 않는다. 반대로 민주주의와 거리가 먼 국가일수록 헌법 전문에 다양한 내용을 기술했다.
대한민국 헌법은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문구를 삽입함으로써 역사를 중시한다. 20세기에 벌어진 주요 역사적 사실을 나열하는데 그것은 3·1운동, 임시정부, 4·19이다. 5,000년 역사를 가진 대한민국 헌법에 기술한 내용이 20세기 사건에 집중되어 있다. 이런 역사적 사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그 평가가 달라지는데, 이런 사실들이 헌법 전문에 들어갈 정도로 중요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미국 헌법 전문에는 헌법을 제정하는 목적만을 기술했는데 그 내용은 연방의 형성, 정의 확립, 안녕 보장, 공동방위, 국민복지, 자유와 축복 등이다. 미국이 영국과 독립전쟁을 치르고 독립했지만 이에 관해서 전혀 기술하지 않는다. 미국 헌법 전문은 단 한 문장으로 간단명료하다.
유럽 국가는 기독교 사상을 중시하여 헌법 전문 서두에 관련 사항을 기술하고 있다. 독일 헌법 전문에서는 “하나님과 인간에 대한 책임을 의식한다”라고 기술했고, 스위스 헌법 전문에는 “천지창조”라는 표현을 기술했다. 내용도 길지 않고 간단명료하다. 프랑스 헌법 전문에서는 준수할 의무와 권리를 제일 먼저 기술했다. 1789년 인권선언을 제일 먼저 언급하면서 인간의 기본권 보장을 강조한다. 기타 종교와 역사에 관한 기술이 전혀 없다. 역사를 헌법 전문에 수록하는 국가는 일부 동부 유럽 국가이다. 1990년 전후에 소련 공산주의 체제에서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독립하면서 일부 역사적 사실을 기술했다. 그렇다고 해서 전문이 장황하지 않고 포괄적이다. 폴란드 헌법 전문에서는 다음과 같이 한 문장으로 역사적 사실을 정리한다. “자신의 운명을 주권적이고 민주적으로 결정할 가능성을 회복한 1989년에….”
남아프리카공화국도 마찬가지이다. 수백 년에 걸쳐서 네덜란드, 영국의 식민지가 되어서 고통을 겪었고 그런 아픈 역사를 포괄적으로 담담하게 기술했다. “과거의 불의를 인식하고”, “고통을 당한 이들에게 경의를 표하며”, “과거의 분열을 치유하고”. 튀르키예는 국부(國父)인 ‘아타튀르크’를 장황하게 기술한다. “민족주의와 불멸의 지도자이며 불패의 영웅인 아타튀르크 공화국의 국부” 중공의 헌법 전문은 헌법이라기보다는 역사 요약서에 가깝다. 분량이 A4 종이 기준으로 세 페이지이고 그 내용이 가장 길다. 19세기부터 20세기까지의 역사를 시기와 인물 별로 다음과 같이 장황하게 기술했다. “1840년 이후 식민지인 반(半)봉건국가로 점차 변했다.” “1911년 쑨원 선생이 이끌었던 신해혁명” “1949년 마오쩌둥 주석이 수령이었던 중국 공산당의 지도”
북한 헌법은 자유민주주의 헌법이 아니다. 오로지 김일성, 김정일만을 찬양하는 사이비 종교 그 이상이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창건자이시며 사회주의 조선의 시조이시다” 주요 국가의 헌법 전문을 간략하게 살펴봤는데 선진국인 미국이나 유럽 국가는 역사적 사실을 기술하지 않았다(독일, 스위스, 프랑스, 미합중국). 역사적 사실을 구체적으로 기술한 국가는 튀르키예, 이라크, 중공, 북한이다. 이들 국가의 헌법 전문은 분량도 많고 역사적 사실이 필요 이상으로 많이 나열되었다. 역사적 사실을 기술하더라도 함축적으로 기술한 국가는 슬로바키아, 체코, 폴란드, 남아프리카이다.
국가의 헌법은 한 나라의 근간이고 시간이 지나도 불변의 가치가 있어야 한다. 특정 정치 이해관계에 따라서 평가가 달라질 수 있는 역사적 사실을 헌법 전문에 수록하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수정해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 따라서 헌법이 본연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심사숙고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