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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학 칼럼] 일본군의가 쓴 소중한 조선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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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4.0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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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의가 쓴 소중한 조선기록 <계림의사>

 

김문학(문명비평가. 비교문화학자)

 

19세기 말 1887년 일본군의가 출판한 조선, 조선인을 면밀히 기록한 <계림의사>(육군문고 1887년 간행)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은 당시 조선인과 조선사정을 알 수 있는 매우 귀중한 역사적 기록자료로서 가치가 있다당시 메이지 일본정부는 지적기술에서도 의학, 법학, 군사를 중시했는 바, 이 분야에서 특히 동아시아와의 관계에 대해서 각별히 중시했다. 왜냐면 국가간의 지배, 피지배에 영향을 미치는 실용의 학으로 되기 때문이다. 이리하여 1880년대 일본은 육군의 의료관료 엘리트를 각기 대만, 조선, 중국 등에 파견하여 조사연구를 하게 했는데 조선에 파견된 자는 문호 모리오오가이의 동기 동창인 고이케마사나오 였다.

고이케(1854-1913)는 의과대학 졸업 후 2년도 못되어 18831월 육군군의 본부의 재직자로 외무성 어용계겸으로 조선부산에 근무하게 된다. 당시 서양과 일본의 세력 앞에서 격동의 시기에 있는 조선에 그가 있었던 것이다. 일본 군의의 엘리트였던 오이케의 눈에 비친 조선, 조선인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계림의사>의 서문에서 의학, 의료는 현실적으로 효용이 있는 분야로서 자신은 이 분야 최전선에서 초매(草昧)를 개척한다고 명시한다. 그 뜻인 즉 미개한 조선은 계몽한다는 것이다. 당시 사실 조선에 관한 기록은 외국인이 쓴 책과 이중환의 <조선8도지>를 일본어로 번역출간한 외에는 그리 흔치 않았다이런 실정하에 고이케는 자신의 <계림의사>가 조선을 세심히 관찰한 기서(奇書)로서 자부하는 것 자체가 흥미롭다. 그만큼 자신의 조선기록에 자신이 있었던 모양이다. 사실 군의에 의한 조선기록이 사상 최초이기도 했다오이케의 기록은 객관성, 정밀성 면에서는 기타 병요지지나 기행문에 비해 탁월하게 뛰어났다. 세심한 관찰 기록과 명석한 문체는 문인 이상으로 좋았다.

그러면 <계림의서>의 내용을 살펴보기로 하자. 상하편으로 구성된 이 책은 상편에서는 조선의 지형, 기후, 풍속, 인품, 인물, 도량형, 주여론 14항목으로 기술한다. 하편에서는 의원의 위치나 구조, 비품, 직원 및 사무, 환자실황에 대해 4개 항목으로 기술한다여기서 흥미로운 몇 단락 묘사를 뽑아 보기로 하자.

(풍속) 이 나라는 아직도 만이의 역을 이탈하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첫째로 국민은 위생관념이 없고 둘째로 조선인의 생명은 우마와 같이 취급함이다. 셋째로 조선인은 광음(시간)을 아낄 줄 모른다. 오호라 조선의 이 3 특징은 만이라 해도 할 수 없도다

(인물) 조선인이 완만로둔(緩慢魯䤜 함은 이미 기술한 적이 있다. 그 성정은 시의(猜疑)가 많고 겸양(謙讓)이 적은 것이다. 또한 언사의 겉치레가 능하다. 상류층은 회로(뇌물)이 성행하고 하류층은 씀씀이가 헤푸며 오로지 주식탐포만을 무상의 쾌락으로 하도다. 그러니 형법이 잔혹해도 좀도둑이 많고 사료가 깊지 못한 까닭에 대적이 적도다. 남자의 완력과 배력의 강함은 실로 경의로운 일이다.

이러한 묘사를 읽으면서 조선인의 후예로서도 필자를 적면케하는 대목들이 적지 않아 다시 우리 민족의 국민성에 대해 숙려하게 된다이중에서 흥미로운 것은 당시에도 조선인의 체력이 우수했다는 것이며, 코이케는 그 이유는 음식에 관계된다고 지적한 것이다. 오이케가 주목한 것은 일본이 불교수용이래 육식을 금한 것에 비해 조선은 육식을 많이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고이케는 조선에서 수년간 조선인 환자를 대상으로 체력, 체격조사를 하여 흥미로운 통계를 내고 있다. 그의 통계에서 보면 조선인은 신장, 흉위, 폐량, 완력에서 일본인보다 월등하게 뛰어났던 것이다.

오이케가 작성한 통계표-체격검사결과

국별

인수

년령

신장

흉의

폐량

완력(왼손)

(오른손)

조선인

75

31.93

179.947

83.067

3373.469

170.667

162.547

일본인

2499

37.5

157.61

-

280.18

-

-

일본보병

409

23.2

157.61

81.79

3337.386

39.056

36.504

일본포병

265

22.11

266.74

85.67

3623.297

42.455

39.673

인본공병

170

23.2

163.65

85.69

3802.438

42.031

39.474

일본치중병

75

23.2

163.05

82.72

3634.030

40.748

38.825

일본4종병

919

23.1

162.88

83.94

3599.295

41.073

38.619

 

고이케는 조선인의 체력이 뛰어남을 강조하면서 아시아에서 제1위라고 긍정한다. 또한 체격이 장대하나 비만하고 강장하다고 판장하며, 단 조선의 위생 개선이 급선무라고 호소하고 있다고이케의 조사기록은 당시 조선의 국민성, 체격, 체력, 생활, 풍속 등 제 분양에 걸쳐 상세히 보여줌으로써 오늘에도 그 가치는 중대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조선 침략의 선행 조사로서의 조사보고라는 점은 이 기록이 일본의 침략에 이용됐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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