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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 우리는 '신의 불'을 훔쳤다, 그리고 ….
[평론] 우리는 '신의 불'을 훔쳤다, 그리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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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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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핵비판' 중에서 발췌한 주한규 교수님의 글
주한규 서울대원자핵공학과 교수
주한규 서울대원자핵공학과 교수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프로메테우스는 제우스가 감추어 둔 불을 훔쳐다 인간에게 주었고 이로 부터 인간의 문명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불을 통해 인간은 익힌 음식을 먹고 추위를 이기며, 청동기와 철기를 그리고 증기 기관을 만들어 동력으로 사용하며 문명을 발전시켜 왔다. 불은 에너지를 대표하며 에너지는 문명을 지탱하는 필수 요소이다. 

프로메테우스가 가져온 불은 화학 반응의 일종인 연소 반응의 산물로서 가연성 물질이 산소와 반응하여 열과 빛을 내는 형태로 발생한다. 불은 인공적으로 에너지를 발생시킬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방식 중 하나이다.

인공적 에너지의 중요한 형태의 하나인 전기는 대개 불로 발생된 에너지를 변환시켜 생성한다. 인류는 지난 세기 초반까지 수백만 년 동안 주로 불로써 에너지를 발생시켜 사용하여 왔다. 수차나 풍차는 단지 보조적인 수단이었다.

그러다 1905년 아인슈타인이 특수상대성 이론을 발표하면서 질량과 에너지의 등가성이 세상에 알려졌다. 이후 현대 물리의 비약적인 발전을 통해 핵반응 과정에서 질량의 감소가 수반되고 이는 막대한 에너지로 변환될 수 있음이 밝혀졌다. 원자력이 탄생한 것이다.

1942년 12월 2일 페르미는 시카고 파일에서 연쇄 핵반응을 성공시켜 원자력 시대를 열었다. 그로부터 3년도 안된 1945년 7월 16일 트리니티라는 암호명 하에 원자폭탄 실험이 성공했다. 원자폭탄은 프로메테우스의 불과 비교가 되지 않는 신의 또 다른 불로서 원자력의 막강한 위력을 보여 주었다. 

원자력은 무기로서 세상의 주목을 먼저 받았지만 1953년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유엔 연설에서 “Atoms for Peace”를 주창한 후 곧 민간 발전원으로 실용화되었다. 사실 미국에서는 1957년에 건설된 쉬핑포트 원자력 발전소(원전)가 최초로 전력망에 전기를 공급하였지만 소련은 그보다 앞선 1954년에 오브닌스크 원전 가동을 시작하였고, 영국에서도 1956년에 콜더 홀 원전을 가동시켰다.

이후 지금까지 60 여년간 전세계 34개국에서 610 여기의 원전이 건설되었고 누적가동 연수가 1만 7300 여년에 달하는 동안 원자력은 세계 여러 나라에서 중요한 에너지원으로 활용되어 왔다. 우리나라에서도 1978년 고리 1호기가 가동된 이래 원자력은 지난 40년 동안 누적 원자로 가동연수 490년을 기록하며 우리나라가 보편적 전력 복지를 달성하는 근간이 되어 왔다. 

막강한 무기의 위력과 값싸고 깨끗한 첨단 에너지원으로서의 양면성을 갖는 원자력은 가히 신이 고이 감추어 둔 또 다른 불이라고 부를 수 있다. 이는 그 에너지의 막대함과 그 비밀을 푸는데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원자력이 오래 감추어져 있다가 20세기 중반에서야 세상에 나타난 것은 그 에너지 발생과정에 오묘한 비밀이 숨겨져 있고 그 비밀을 찾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더 조깰 수 없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라고 생각해서 아톰이라고 이름 붙여진 원자가 원자핵과 전자로 구성되어 있고, 그 원자핵이 양성자와 중성자라는 핵자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핵자들을 단단히 결합시켜 주는 핵력이라는 게 존재하고, 핵자 한 개 당 평균 핵력이 원자가 커질수록 작아지므로 원자핵이 쪼개질 때 핵자를 단단히 결합시키고 있던 에너지의 일부가 외부로 방출되며 총질량은 감소된다는 것을 알아내는 데는 20세기 초에서야 세상에 나온 양자역학의 이해가 필요했다. 

원자핵이 쪼개지는 것을 핵분열이라고 한다. 핵분열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중성자를 우라늄 같은 무거운 원자핵에 흡수시켜 원자핵을 동요시켜는 과정이 필요하다. 동요된 원자핵은 분열 과정을 통해 두 개의 가벼운 핵으로 쪼개지면서 질량 감소를 유발하고 이 때 감소된 질량 m 이 E=mc2 의 공식에 따라 에너지로 방출되게 된다.

핵분열은 핵반응의 일종인데 질량 감소를 수반하는 핵반응에서 발생하는 에너지는 화학반응의 수백만 배가 될 만큼 막대하다. 우라늄 1g을 핵분열 시키면 석탄 3t을 연소시킬 때 발생하는 에너지가 발생한다. 그래서 원자력은 아주 고밀도 에너지원이다.

원자력의 이러한 에너지 고밀도성이 원자력이 신이 감춰 놓은 또 하나의 불이라고 부를 근거가 된다. 고밀도성 때문에 원자력은 막강한 파괴력을 가질 수도 있지만 핵반응 속도를 완만히 하면 아주 효율적이고 유용한 에너지원이 될 수가 있다.

반면, 원자력에는 매우 중요한 단점이 하나 있다. 그것은 핵반응 과정에서 생성되는 부산물들이 방사능을 띤다는 점이다. 방사능은 열을 발생시키고 인체와 환경에 위해를 끼칠 수 있다.

대부분의 핵반응 부산물들은 반감기가 수일 이내로 짧아 곧 소멸하지만 초기 소멸 시간동안 고열을 발생시키므로 핵반응이 정지된 원자로라도 계속 냉각을 시켜 주어야 한다. 원자로 정지 후에도 발생하는 열을 잔열이라 한다. 원자로 정지직후 잔열은 원래 정격 출력의 7%나 될 만큼 높고 한 시간 뒤에는 2%, 8시간 뒤에는 1% 수준으로 감소하지만, 한달 뒤에도 0.1% 정도로 유지되는 중요한 열원이다.

한편, 일부 핵반응 부산물은 30여년의 반감기를 가지고 한 사람의 생애 내내 방사성 붕괴를 하며 현세대의 인류의 인체와 환경에 위해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다른 부류의 부산물은 수천 년 이상의 반감기를 가지며 우리 후손에게 위해를 줄 수 있는 위험성이 있다.

원자력이 고밀도 에너지원 이라는 유용성에도 불구하고 잔열과 방사능의 위험성 때문에 원자력은 신이 그야 말로 고이 감춰두었던 또 다른 불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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