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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등대지기'가 어째서 고은의 시인가?
[칼럼] '등대지기'가 어째서 고은의 시인가?
  • 프리덤뉴스
  • 승인 2018.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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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은/소설가
▲ '등대지기'는 1949년 일본 소학교 5학년 음악 교과서에 실린 일본인의 시이다. 포항의 등대지기 시 철거
▲ '등대지기'는 1949년 일본 소학교 5학년 음악 교과서에 실린 일본인의 시이다. 포항의 등대지기 시 철거

포항 관공서 벽면에 있는 고은의 등대지기 시를 포항시가 철거하기로 결정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나는 고은이 썼다는 <등대지기>라는 시가 내가 알고 있는 노래 가사일 줄은 전혀 몰랐다. 왜냐하면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니까. 아마 같은 제목의 시가 있나보다 했다.

그래서 고은의 등대지기를 찾아봤다. 순간 나는 기염을 토할 수밖에 없었다.

<등대지기>를 고은이 번역했나.

"그렇다면 내가 구르몽의 시 '낙엽'을 번역하면 구르몽의 낙엽은 김기은 시의 낙엽이 되나?"

어이없음은 분노로 발전해갔다.

"이런 사람이 노벨상 작가 후보라고?"

이 시는 1947년 일본의 소학교 5학년 음악교과서에 실려 있던 등대수(도우다이모리) 즉 <등대지기>라는 가사다. 그걸 그대로 번역한 것으로, 일본은 외국 곡에 일본어로 번안 가사를 붙여 음악 교과서에 실어놓았다. 당연히 작사가가 일본인으로 되어있는 시다.

나이 지긋한 일본인들은 어릴 때 학교에서 부르던 이 노래에 대한 향수가 있단다. 20대 때 학원에서 일본어를 배우면서 일본인에게 이 노래를 원래가사로도 배웠다.

가사가 2절까지 한 두 단어 빼고 거의 똑 같다. 우리나라에 없는 북해라는 말을 바꾼 정도.

내가 즐겨 부르고 좋아하던 노래였는데 일제의 산물이라는 걸 알고 엄청 실망했던 기억이 있다. 실제로 우리가 잘 아는 어릴 때 부르던 옛날 동요 중에는 일제 식민지 시대의 일본 동요를 번역한 것이 많다.

<등대지기>(고은)

황당하기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일본 노래랑 비교해서 보고 또 봤다. 번역을 너무 잘해서 고은 시로 인정한 건가하고. 이건 표절도 아니고 그냥 번역이었다.

다음은 직역 가사다.

凍れる月影 空に冴えて 얼어붙은 달빛 그림자 하늘에 맑고(선명하고, 차갑고, 냉랭하고)
真冬の荒波 寄する小島 한겨울 거센 파도 부딪히는 작은 섬
想えよ灯台 守る人の 생각하라 등대 지키는 사람의
尊き優しき 愛の心 숭고하고(숭고, 존귀) 아름다운 사랑의 마음을

激しき雨風 北の海に 거친 비바람 북쪽 바다에
山なす荒波 猛り狂う 산을 이룬 거치 파도 미친 듯 날뛰네
その夜も灯台 守る人の 이 밤에도 등대 지키는 사람의
尊き誠よ 海を照らす 숭고한 정성 바다를 비추네

필자의 어설픈 일어 실력으로도 이 정도는 번역이 된다.

다음은 고은의 등대지기다.

얼어붙은 달그림자 물결 위에 자고
한겨울의 거센 파도 모으는 작은 섬
생각하라 저 등대를 지키는 사람의
거룩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마음을
모질게도 비바람이 저 바다를 덮어
산을 이룬 거센 파도 천지를 흔든다
이 밤에도 저 등대를 지키는 사람의
거룩한 손 정성이어 바다를 비친다

일제 식민시대를 지낸 그라면 모국어 못지않은 일본어 실력을 갖고 있을 테니 시인이라면 직역보다는 이 정도의 문장을 다듬기는 기본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걸 본인이 지었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만일 노벨상 타고나서 이걸 고은 시라고 자랑스럽게 내세워 걸어놨다가는 세계적으로 개망신 당하는 것은 뻔한 이치다.

그런데 더 기가 막힌 것은 이것이 초등학교 음악교과서에 최근까지도 고은 작사로 실렸고, 중학교 1학년 검인정 국어교과서(2010년 지학사 외)에 고은 시로 실렸다는 것이다.

이 상황이 너무 말이 안 돼서 어쩌면,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고 자료를 찾아보았다. 그러다가 한 인터넷사이트에서 이 동요에 대해 아주 상세히 설명해놓은 것을 찾았다.

(BS Public-동요 <등대지기>의 원곡을 찾아서. http://me2.do/5IU4FBen)

등대지기가 고은 시가 아니라는 것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었다. 일본서 이미 1920년대부터 여러 가사를 붙인 창가로 불리고 있던 노래였으며, 1947년 일본 근대화 과정에서 일본 교과서에 일본시인 勝承夫(かつ よしお 카츠 요시오)가 시를 써서 초등학교 5학년 음악교과서에 실었다는 내용이다. 이것이 지금 알고 있는 위의 노래다.

勝承夫를 찾아봤더니 실제로 그의 작품 중에 灯台守(등대지기)가 있었다.

나는 이걸 읽고 원로 시인의 뻔뻔스러움에 다시 한 번 분노를 금할 수가 없었다. 남의 시를 자기 시라고 어쩜 그렇게 당당히 국고를 받아 시낭송회를 하고, 관광지에 버젓이 새겨놓고. 초등음악, 중학교 국어교과서 등에 싣고.......

그렇게 해도 되는 거라면, 오늘 당장 나도 일본시를 하나 골라 변역해서 그럴 듯하게 다듬어 내 시로 발표 해볼까 한다. 아하, 일단 뭐로든 유명세를 먼저 타야 하는 건가. 그래야 독자가 맹신할 터이고 아무도 못 건드릴 거 아닌가.

만일 거꾸로 1933년생인 고은이 14살 이전에 쓴 시를, 1947년 이전에 일본의 거장 시인인 勝承夫가 표절하여 일본 교과서에 실은 거라고 주장할 거라면 고은은 그것을 증명해야 할 것이다.

특히 최근 한겨레에 칼럼을 썼다. 자신이 쓴 시 '세노야'가 일본 뱃노래 후렴구라는 어느 전문가의 지적에 그는 '세노야가 일본어라고만 단정하기 주저한다'고 반박문 비슷한 글을 썼는데 참 혼란스럽게 한다.

그러면서 '근대어의 경우 일본의 조어를 그대로 받아들인 사실을 굳이 숨길 까닭도 없다. 이는 현대 한국이나 중국어의 관념어 대부분이 해당한다.

그래서 우리 언어의 한 부분은 고대에는 중국에 빚지고 근대에는 일본에 빚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라는 인식을 피력하고 있다. 이러한 인식으로 그가 한국어로 시를 쓰고 있다는 사실이 경악스럽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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