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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우울한 마음을 꽃으로 치유하자
[칼럼] 우울한 마음을 꽃으로 치유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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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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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정/칼럼니스트(정치학박사, 동양화가)
이현정/칼럼니스트(정치학박사, 동양화가)

봄이 오는 길목은 워낙 까다롭다. 이때쯤 으레 겪는 감기몸살은 "감잡아 지금, 몸이 살려 달라"는 신호다. 봄이 되려면 꽃샘추위도 있고, 꽃가루도 날린다. 이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러나 인재(人災)인 황사와 미세먼지의 피해는 생각보다 심각하다.

언제부터 이랬나할 정도로 공기는 깝깝하고 막막하게 되었다. 목구멍이 아프고 눈이 칙칙하다. 그 외에 심장질환, 폐질환. 치매까지 악영향을 끼친다는데, 미세먼지 농도에 따라 자살위험이 평소보다 4배까지 증가한다는 분석도 나왔다.

인간의 육체로 파고드는 오염물질들은 이제 우리의 정신적인 고갈을 불러오고 있다. 죽음을 불러오는 미세먼지. 그러나 그 속에서도 꽃은 준비를 단단히 하고 있었다. 아파트 벽 앞에 서있는 목련은 일찍이 새싹을 보여주었다. 미세먼지로 지구의 모든 생명체가 상처를 받지나 않을지 모르겠다.

85세 친정노모는 워낙 손재주가 많은 데다 요즘 배우는 꽃꽂이에도 실력을 뽐내신다. 일주일에 한번 씩 들고 오시는 꽃꽂이가 상큼하다. 꽃이란 보기만 해도 좋고 마음이 화사해진다.

배우는 입장에서도 꽃향기도 좋고 만지는 촉감도 좋다고 하신다. 각종 행사에서나 격조 있는 분위기연출, 다양한 인간관계 등에서 꽃은 없으면 서운하고 있어야 빛이 나는 최고의 촉매제가 되고 있다. 물론 남성이 여성에게 구애할 때도 꽃은 큰 효과를 낸다.

이러한 꽃이 주는 감성의 영향력은 크다 할 수 있으나 실상을 파헤쳐보면 영~ 아니다. 생물학자들에 따르면, "꽃은 식물의 성기!"라 한다. 그것도 백주대낮에 자신들의 성기를 있는 그대로 활짝 펼쳐 보이는 흉측한 짓을 하고 있는 것이다. 식물들은 발이 달려 스스로 제 짝을 찾아다닐 수 없기 때문에 아예 드러내놓고 날아다니는 음경을 부르는 행위가 바로 꽃을 피우는 일이라는 것인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이런 망측하다."

지구에서 가장 먼저 생명의 시작을 알린 건 동물이나 인간이 아닌 식물이었다. 지구의 터줏대감은 식물이고 그들로서는 자기네 방식이 원형이라 생각할 것이다. 이것은 우리 인간의 입장에서는 흉측스럽지만 식물들 입장에서는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다. "원래 그런 거야"라고.

대신 곤충이나 척추동물들을 위해 아름다운 꽃을 피우거나 특유의 향을 발산한다. 그 곤충이나 동물이 좋아할 만한 향기를 내뿜는다고 하니 참으로 기특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러한 동물들이 꽃가루받이를 해주기 때문이다. 그냥 주는 공짜는 아니다.

청나라 문인화가 이방응(李方膺, 1698~1754)은 양자강 하류 지방에 개성 강하고 한 고집들 하는 삐딱선 탄 8명의 괴이한 예술가들인 양주팔괴(揚州八怪)중 한사람이다. 남들 눈치 전혀 신경 안 쓰고 자기 하고 싶은 대로 그림을 그리면서 개성을 뽐낸 사람들로서 당대의 고답적인 전통에서 파격적인 붓질로 예술 사조를 벗어난 개성파들이다.

이방응 역시 시대의 이단아로서 그의 그림 또한 파격적이었다. 그의 전도춘풍도(顚倒春風圖)는 기존의 멋스럽고 여인네 눈썹 같은 난이 아닌 고정관념을 파괴한 '봄바람에 뒤집혀진 난'이다. 보통 난을 칠 때는 "난 꽃에 꽃술을 그리는 것은 미인의 눈을 그리는 것이니 급소나 마찬가지다. 꽃술을 그릴 때는 ..... 이러구 저러구" 하는 철저한 교과서적인 매뉴얼이 있어왔다.

그런데 이방응은 돌연 '봄바람에 뒤집혀진 난'을 그렸다. 또한 붓질도 수전증 있는 사람이 그렸을 법한 둔탁한 난의 꺾임을 보여준다. 봄바람의 매서움, 봄바람 속에서 뒤집을 만한 고약한 심사 등이 느껴진다. 진짜 봄바람의 앙칼진 모습을 그린 것은 아닐까.

어쨌든 여기저기 봄꽃내음이 시작되고 봄꽃 축제뉴스가 가득하다. 봄의 시작을 알리는 꽃소식은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너무 빨리 피고 너무 빨리 진다. 감상할 여유조차 주지 않고 가버린다. 예전에도 그랬을까? 꽃들도 인간들처럼 빨리빨리병에 전염된 것은 아닌지 알 수는 없지만 여유롭게 느끼기엔 아쉬움이 남는다.

20세기 초 야수파의 거두로서 또한 색채의 마술사로 일컬어졌던 앙리 마티스(1869~1954)는 우리가 흔히 보는 것에 대한 무관심을 그림을 통해 알려주기도 했다. 그는 화실입구에 아칸서스를 줄지어 심어두었는데, 화실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늘 물었다.

"올라오는 길에 혹시 아칸서스를 보지 않았소?" 의외로 봤다고 하는 사람이 드물었다. 이에 마티스는 "아칸서스무늬로 장식된 건축 벽면이나 공예품이 생활 주변에 너무 많아서 기억 속에 뚜렷이 박힌 형상은 오히려 실물을 보지 못하게 만드는군."이라고 했다.

"기억은 실물을 덮어버린다."는 말이 맞는가 보다. 우리의 생활 속에서도 풀이 초록색이라는 것과 하늘의 색, 각종 꽃들의 색과 모양 등을 우리는 쉽게 스쳐지나가 버리고 만다. 대상을 대상 그 자체로 보는 순수함이 힐링이다.

이런 것들을 현대의 쾌속스피드에서 잃어버리는 것은 참으로 불행한 일이다. 미세먼지로 우울할 위험이 높다는데 우리 앞의 꽃들을 꽃 그 자체로 사랑하고 바라봐주는 것이 곧 힐링이 될 수 있다. 내 앞의 꽃으로 스스로를 치유하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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