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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념에세이] 아! 옛날이여
[푸념에세이] 아! 옛날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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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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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경민/수필가(한국문인협회 회원)
노경민/수필가(한국문인협회 회원)

"내가 너희들을 어떻게 키웠는데, 먹을 것 다 먹고, 자고 싶은 잠 다 잤으면 벌써 길거리 나 앉았다."

허리띠 졸라매고, 먹을 것 안 먹었고, 편한 잠 한번 마음껏 못 잤다. 마음 놓고 앓아누워보지도 못했으며, 처방 한번 제대로 받아 약을 사 먹어 보지도 못했다. 입을 것 안 입어가며 담배 한 갑 고급으로 사 피워보지도 못했다.

장사를 나갔다가도 자식 놈들 배고플 봐 학교 돌아올 시간에는 집을 지켰다. 오로지 새끼들의 뒷바라지가 보람이자 생의 목표였다. 그런데 뭐가 어떻다고? 그 눈물겨운 희생과 애정이 바보 같다고?

"누가 그렇게 살래? 다리 아프면 병원 가서 수술하면 되지. 밤낮 아프다면서 병원 안 간 게 누군데? 또 누가 먹지 말랬어?"

자식들은 제가 잘나서 저 혼자 그렇게 큰 줄 안다. 집마다 컴퓨터에 가족이 하나씩 휴대전화기를 가진 나라, 월드컵 축구와 올림픽까지 치른 선진국에서 무슨 걱정인가 한다. 오늘날의 민주화와 경제발전의 밑거름이 바로 기성세대의 피눈물인 것을 모른다. 아니 알아도 인정하지 않는다.

옛날에는 가정에서 '조부모'가 1순위였다. 요즈음은 자식과 마누라, 거기에 애완견에게조차 밀려난 가장은 4순위이다. 조부모는 아예 끝 순이다. 반찬이나 간식도 애들 입맛이 우선이고 노인네 틀니는 씹을 것이 없다.

"아니, 내가 하루 이틀 핀 담배냐고? 할미가 담배를 피운다고 증손자를 안지도 못하게 해? 고것이 고물고물 다가오는데 만지지도 못하게 하다니. 세상이 말세야! 말세!."

고단한 직장생활로 유산의 아픔을 겪은 손녀가 어렵게 얻은 자식이라는 거 잘 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담배를 끊어야, 그러기 전엔 아기를 안길 수가 없다 하니 기가 차다. 자식 넷에 손자 손녀들도 키운 손을 질색하다니 헛기침만 터진다.

경로사상은커녕 근처에 얼씬도 말라니 뒷방으로 밀려난 신세다. 백 년만 일찍 태어났으면 1순위로 살았을 텐데…

반백자불부대(斑白者不負戴)라고 송강 정철의 훈민가가 떠오른다.

이고 진 저 늙은이 짐 풀어 나를 주오

나는 젊었거늘 돌이라 무거울까

늙기도 서럽다고 하겠거늘 짐을 조차지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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