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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왜 ‘대한민국 건국 70주년’을 부정하려 하나?
[칼럼] 왜 ‘대한민국 건국 70주년’을 부정하려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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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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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영/(재)굿소사이어티 이사(前경희대 객원교수
이철영/(재)굿소사이어티 이사(前경희대 객원교수

건국 70주년’이냐 ‘정부수립 70주년’이냐라는 논란 속에 정부는 지난 8월 15일 국립중앙박물관 열린마당에서 ‘광복73주년 및 정부수립70주년 경축식’을 거행했다. 같은 시간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는 「대한민국 건국 70주년 기념위원회」가 주관한 ‘대한민국 건국 70주년 기념식’이 개최되었다.

 

올해 ‘8.15 광복절’이 ‘정부수립 70주년’인지 ‘건국 70주년’인지, 그리고 좌우파 역사학자들과 정치권이 ‘대한민국 건국일’을 놓고 왜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지 그 이유를 일반 국민들은 잘 모를 수 있다.

 

대부분의 국민들은 ‘8.15 광복절’이 국경일이라는 사실 외에 해방(解放), 광복(光復), 독립(獨立), 건국(建國)이란 용어들의 차이를 구분하는 것부터 쉽지 않을 것이다.

 

이런 국민들 중의 한 사람인 필자가 「대한민국 건국 70주년 기념위원회」가 주관한 ‘대한민국 건국 70주년 기념 세미나와 기념식’에 참석하면서 느낀 바를 일반 국민의 시각에서 서술해보고자 한다.

 

우선, 대한민국의 건국 년도를 살펴보기 위해 지난 1936년 8월 베를린 올림픽을 돌아보자. 당시 마라톤 경기 입상자 기록판에는 한국의 손기정과 남승룡 선수가 아닌 일본의 Kitei Son과 Shoryu Nan이 각각 1위와 3위를 차지한 것으로 기록되었다.

 

그 후 「동아일보」는 손기정의 시상식 사진에서 일장기를 지우고 보도했다. 이 사건으로 관련 기자들은 구속되었고 사장과 부사장은 사임했으며 「동아일보」는 최장기 무기정간(279일간)을 당했다.

 

당시 대한민국이 독립국가였다면 왜 우리 선수들이 일장기를 달고 일본 선수로 뛰었을까? 당시 대한민국이 전세계가 인정하는 독립국가였다면 한국 선수가 일본 선수로 등록하고 뛰는 것을 국제올림픽위원회에서 어떻게 인정할 수 있었을까? 사진에서 일장기를 지웠다고 왜 우리 국민이 구속되고 신문이 정간되어야 했을까?

 

또 한가지 사실을 살펴보자.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란 가사로 잘 알려진 <우리의 소원>이란 곡은 대한민국 정부수립 직전인 1947년 서울 중앙방송국의 3·1절 특집 어린이 프로그램을 위해 작사, 작곡된 노래다. 당시 이 노래의 가사는 '우리의 소원은 독립/꿈에도 소원은 독립'이었다.

 

그 후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남북분단이 현실화되면서 당시 국민학교 교과서에 이 노래를 실으면서 '우리의 소원은 독립'을 '우리의 소원은 통일'로 가사를 바꾼 것이다.

 

1947년 당시 대한민국이 독립국가였다면 서울 중앙방송국의 3.1절 특집프로그램을 위해 “우리의 소원은 독립……”이란 노래를 만들었겠는가? 역사학자나 정치인들의 주장의 옳고 그름을 떠나, 위의 두 가지 사실로만 볼 때도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당시나 1947년 3.1절 당시에도 우리가 독립국가가 아님은 국내외적으로 인정되어 있었던 게 사실 아닌가?

 

따라서 대한민국의 건국 과정은 1910년부터 1945년까지 일본 식민지, 1945년부터 1948년까지 미군정기(美軍政期)를 거쳐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이 독립국가로 탄생한 것으로 구분하는 것이 타당하지 않은가?

 

일부 학자나 정치인들의 주장처럼 대한민국이 1919년에 건국되었다면 그 이후에 여러 독립운동단체들이 각지에서 벌인 독립운동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지난 2017년 1월31일 교육부가 역사·한국사 교과서 집필기준과 국정역사교과서 최종본을 발표했다. 당시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대한민국 수립'과 '대한민국 정부 수립' 표현을 모두 쓸 수 있도록 검정교과서 집필기준을 제시한 교육부에 대해 "뉴라이트의 '건국일' 주장을 지켜주는 데 성공했다.

 

국정화 정책의 시작은 반민주주의”라고 비판하며 국정교과서 정책 폐기를 촉구했다. 그리고 2017년 5월 새 정부가 들어서자마자 가장 먼저 취한 조치가 국정역사교과서의 폐기였다.

 

역사는 과거의 사건(사실) 그 자체이자 그 사건의 기록이다. 기록으로서의 역사는 후세 사람들이 유물, 형적(形跡) 또는 사건의 흔적(痕跡)을 바탕으로 추론한 결과이므로 ‘이견(異見)’과 ‘왜곡(歪曲)’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역사 기록의 객관성 또는 진실성은 역사를 해석하고 기록하는 사람들의 정직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우리나라의 국정역사교과서 정책은 편향된 이념에 의한 역사의 왜곡을 바로잡기 위한 현실적 방안 중 하나였다.

 

지난 8월 11일 국회 회의실에서 개최된 좌우파 학자들간의 건국일에 관한 ‘자유민주진영 대 민주진영 토론회’에서 민주진영 측의 한 토론자는 박근혜 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독재정부의 전체주의적 발상으로 ‘다양성’을 부정한 처사이며 ‘건국 70주년’ 주장은 북한의 주장을 추종하는 것이라는 주장을 했다.

 

우선, 국정역사교과서 폐기를 정당화하기 위한 위의 토론자의 “창의력을 키우는 다양성”이란 논리는 편향된 이념으로 우리나라의 역사와 국가의 정체성에 혼란을 초래할 궤변일 뿐이다.

 

또한 북한 추종이라는 주장을 이 토론자의 논리로 반박하자면 우리가 일찌감치 올해의 ‘건국 70주년’을 국내외에 홍보했다면 오히려 북한이 우리의 주장을 추종해야 하는 결과가 되었을 것 아닌가?

 

더불어민주당은 대한민국 건국의 정통성이 ‘1919년 대한민국을 건국한 임시정부에 있다’고 주장하지만, 1910년 한일합병 이후 우리 민족이 국제법적으로 국토, 국민, 정부, 그리고 주권을 완전히 회복한 날은 1948년 8월 15일이다.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억지 논리로 이런 사실을 부정하려 한다면, 역사의 해석을 특정 목적을 위해 정부와 여당 주도로 논하려는 것 자체가 독재이고 전체주의적 발상 아닌가?

 

3·1운동과 임시정부는 좌우파를 떠나 대한민국 국민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독립투쟁의 역사다. 그래서 대한민국 헌법 전문처럼 대한민국의 법통(法統)이 여기서 출발하여 끈질긴 독립투쟁과 국제정세의 흐름의 결과로 1948년 8월 15일에 비로서 대한민국이 건국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건국’에 관한 논란은 내년을 ‘건국 100주년’으로 기념하겠다는 정부 방침으로 인해 더욱 가열될 조짐이다. 정부가 ‘건국 100주년’을 거론하는 것은 청와대가 임시정부와 망명정부를 구분하지 못한 때문일지도 모른다.

 

‘제주난민 수용 반대청원’에 대한 답변 중 청와대 담당자가 “상해임시정부도 일제의 박해를 피해 중국으로 건너간 정치적 난민이 수립한 망명정부였다”고 답했으니 말이다.

 

망명정부란 국가체제를 갖춘 기존의 정부가 불가피한 사유로 본국의 영토 밖으로 본거지를 옮겨 통치기능을 유지, 행사하는 정부를 말한다. 그러나 국가 구성 4요소들을 갖추지 못했던 상해임시정부는 그야말로 ‘임시’ 정부였지 하나의 독립국가라 할 수 없다.

 

지난 8.15 행사는 2,000여명의 초청인사들과 개최한 정부의 ‘광복73주년 및 정부수립70주년 경축식’ 외에 심재철 의원을 주축으로 일부 야당국회의원들과 700여 국민들이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대한민국 건국 70주년 기념식’을 가졌다.

 

당일 오후에는 수만 명의 국민들이 광화문 일대에 집결하여 ‘건국70주년’ 기념 집회를 갖고 청와대 앞까지 가두행진을 벌였다. 이런 상황에도 지상파방송 및 제도권 언론들은 국회 행사나 국민 수만 명의 외침에는 철저히 눈과 귀를 막고 있다. 정부와 언론이 합세해서 역사 왜곡에 앞장서고 있는 모양새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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