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 좋은 자리엔 이미 산소가 있다.
좌청룡 우백호에 배산임수하면 최고의 명당이라 하여 탐내는 산소자리다. 땅에서 길흉화복을 찾는다. 그래서인지 산소에 가면 편안하고 풍경도 좋고 물도 있어 땀도 씻어내니 좋다.
"할머니는 살아계실 제 늘 무릎에 날 앉혀주셨지. 그때는 망령 났다 하였는데, 지금 생각하니 그건 치매였어. 그 와중에도 손녀딸은 젤 예뻐해 주셨거든. 할머니 묻힌 망우리 공동묘지를 학교 마치면 책가방 들고도 할머니 산소를 찾아가곤 했어."
그 공동묘지는 버스에서 내려 언덕을 두 개 넘어서면 중턱에 자리하고 있는데, 산소 옆에 작은 시내가 흘러서 그 물에 얼굴을 씻고 손으로 떠 마시면 어찌나 시원하던지.
멀리 남산이 보이고, 더 멀리 산도, 길도, 들판도 보이는 게 속이 탁 트인 맛에 올라가곤 했다.
한식엔 잡귀가 없는 날, 즉 손이 없는 '무방수 날'이라 하여 무슨 일을 해도 탈이 안 난다 했다. 이날 산소에 난 잡풀을 뽑고 떼를 새로 입히며, 주변에 나무를 심는 등 조상의 묘를 두루 살폈다.
추석에는 차례를 지내고 성묘를 한다. 겨울채비도 하고.
차례 지내고 난 설날 아침에도 성묫길에 나서는데, 손주까지 온 가족이 함께하는 나들이길이다. 아버지가 들려주는 할아버지는 수염도 근사하고 도포자락 입으신 선비의 근엄하며 훌륭하신 분이었다. 그 이야기 다음에 더 거슬러 올라가 까마득한 조상님의 벼슬자리는 높고도 높았다.
"이젠 산소도 못 쓰고 화장해야 한다니…아파트에 살아 땅을 밟지 못하는데, 납골당에 차곡차곡 쌓아놓고 콘크리트와 유리벽에 대고 절을 하니. 세상에나."
자손들이 안 찾는 산소는 화장하자고 한다. 공원묘지에 모셔놓고 찾아들지 않으니 무연고묘지 공고가 붙었다. 자식도 안 찾는데 손자가 오겠는가.
남아 있는 가족들의 마음이 머무는 자리건만, 찾아갈 곳이 있다는 게 위안이 되고, 넋두리도 늘어놓고, 잠시 삶을 내려놓을 수 있는 곳으로 그만한 또 곳이 있으려나.
쉬어갈 구름도 바람도 이젠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