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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념에세이] 과연 손자가 오겠는가
[푸념에세이] 과연 손자가 오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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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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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경민/수필가(한국문인협회 회원)
노경민/수필가(한국문인협회 회원)

풍수 좋은 자리엔 이미 산소가 있다.

좌청룡 우백호에 배산임수하면 최고의 명당이라 하여 탐내는 산소자리다. 땅에서 길흉화복을 찾는다. 그래서인지 산소에 가면 편안하고 풍경도 좋고 물도 있어 땀도 씻어내니 좋다.

"할머니는 살아계실 제 늘 무릎에 날 앉혀주셨지. 그때는 망령 났다 하였는데, 지금 생각하니 그건 치매였어. 그 와중에도 손녀딸은 젤 예뻐해 주셨거든. 할머니 묻힌 망우리 공동묘지를 학교 마치면 책가방 들고도 할머니 산소를 찾아가곤 했어."

그 공동묘지는 버스에서 내려 언덕을 두 개 넘어서면 중턱에 자리하고 있는데, 산소 옆에 작은 시내가 흘러서 그 물에 얼굴을 씻고 손으로 떠 마시면 어찌나 시원하던지.

멀리 남산이 보이고, 더 멀리 산도, 길도, 들판도 보이는 게 속이 탁 트인 맛에 올라가곤 했다.

한식엔 잡귀가 없는 날, 즉 손이 없는 '무방수 날'이라 하여 무슨 일을 해도 탈이 안 난다 했다. 이날 산소에 난 잡풀을 뽑고 떼를 새로 입히며, 주변에 나무를 심는 등 조상의 묘를 두루 살폈다.

추석에는 차례를 지내고 성묘를 한다. 겨울채비도 하고.

차례 지내고 난 설날 아침에도 성묫길에 나서는데, 손주까지 온 가족이 함께하는 나들이길이다. 아버지가 들려주는 할아버지는 수염도 근사하고 도포자락 입으신 선비의 근엄하며 훌륭하신 분이었다. 그 이야기 다음에 더 거슬러 올라가 까마득한 조상님의 벼슬자리는 높고도 높았다.

"이젠 산소도 못 쓰고 화장해야 한다니…아파트에 살아 땅을 밟지 못하는데, 납골당에 차곡차곡 쌓아놓고 콘크리트와 유리벽에 대고 절을 하니. 세상에나."

자손들이 안 찾는 산소는 화장하자고 한다. 공원묘지에 모셔놓고 찾아들지 않으니 무연고묘지 공고가 붙었다. 자식도 안 찾는데 손자가 오겠는가.

남아 있는 가족들의 마음이 머무는 자리건만, 찾아갈 곳이 있다는 게 위안이 되고, 넋두리도 늘어놓고, 잠시 삶을 내려놓을 수 있는 곳으로 그만한 또 곳이 있으려나.

쉬어갈 구름도 바람도 이젠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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