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07 22:52 (일)
[명시 산책] 고등어 자반
[명시 산책] 고등어 자반
  • 프리덤뉴스
  • 승인 2018.11.2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 자 민

 

고향의 어머님 품처럼
포곤히 따뜻하던 남해의 바다가
한 때 있었다

그 등푸른 쪽빛 바다를 자유로이
유영하던 추억은

잃은지 오래다

등지느러미와 등짝에나마 희미하게
푸르스름한 무늬만 남았다

기쁨도, 슬픔도, 즐거움도, 분노도
언제 있었던가?

가물 가물한 기억의 흔적은
망각의 동굴 너머로 하얀 포말처럼
사라져버려

서러운 가슴만 안고,  
늙어가던 지느러미 노를 접었다

그럭 저럭 바다 속 이 구석 저 구석을
헤매어 다니다가

어느 날 해지는 저녁,
늙은 어부의 저인망 그물에 걸려들었다

바다의 자유조차 잃어버리고
어느 남해 항구 저잣거리에 팔려나왔다

어느 늙어가는 여인네의
주름진 손에 소금으로 염해지고는

반토막 나고 기름에 튀겨졌다가
먹다 남아 식어진 주검.

어느 게으른 가장의 아침에 징용되었다가
다시 전자레인지 초음파에

지글 지글 끓어올랐다가
젓가락에 낙엽더미 파헤치듯이

헤짚혀지고 남은 건
슬픔의 드높은 뼈대 뿐이다

쓸모없어 접혀진 돛단배의 외로운
돛대와도 같은 것이다

어느, 어느, 어느

어느 쓸쓸함을 먹은 나도 언젠가는
어느 존재였었던게

기억나지
않게 될 미래의 어느 날이

어느 순간 오리란걸
알게 되리라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