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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념에세이] 겨울농사 김장
[푸념에세이] 겨울농사 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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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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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경민/수필가(한국문인협회 회원)
노경민/수필가(한국문인협회 회원)

11월의 들판은 단풍보다 푸른 배춧잎으로 풍성하다.

마지막 햇살을 듬뿍 담아 한 아름으로 안겨 오는 배추통과 쭉쭉 뻗어 나가는 무청으로 푸르다. 단풍놀이 나선 길에 펼쳐진 푸른빛이 싱싱하다.

"올해는 한 접 갖고는 턱도 없겠다. 새끼들 입성에 한 접 반은 해야겠다."

한 접은 배추 100포기요 한 접 반이면 150포기를 소금에 절이고 속으로 넣을 무는 몇 다발이 될는지. 갓이며 미나리, 쪽파, 대파도 준비해야 하고, 벌써 봄부터 새우젓에 멸치젓 담근 거 다려야 한다. 오만가지 엄마의 손맛이 펼쳐지는 명절 버금가는 잔칫상 김장철이다. 김장이 겨울농사이던 시절이 있었다.

"무슨 김장을 한다고. 요즘은 그냥 사 먹어. 담근 김치도 맛있어. 바로바로 담가서 보내오니 싱싱하니 좋다."

큰 병을 치르고 난 친구는 간편한 것이 좋다고 사먹는다. 먹을 것이 많다 보니 김치도 예전같이 많이 먹는 것도 아니니 조금씩 사 먹는 것이 편하단다.

"그래도. 겨울나기는 김장해 둬야 마음이 부자지. 요즘은 편하게 절임 배추 사서 하면 간편해. 하긴 속도 판다더라."

집마다 먹는 입성이 틀리다. 새우젓으로만 간하는 집이 있는가 하면 생선을 다져 넣기도 한다. 봄에 먹을 김치에는 물오징어도 넣고 생태며 갈치도 다져 넣어 곰삭은 생선 먹는 맛이 일품이란다. 빨리 먹을 거와 속을 덜 넣고 찌개로 끓여 먹으려고 짜게 담는 김치도 있다.

김장하는 날은 동네잔치였다. 너른 마당에 밤새 절군 배추를 새벽에 뒤집어 놓으며 아침나절 씻어 광주리 둘레로 엎어놓아 물을 뺀다. 무채를 썰어 고춧가루 물들여 놓은 것에 쪽파며 야채 썰어 넣고 마늘부터 갖은양념 넣고 버무린다. 허리가 끊어진다고 악악거리면서 버무리고 나면 작은 양푼 하나씩 차지하고 앉아 배춧속을 넣는다.

동네 아주머니들 모여 앉아 손으로는 배춧속 넣으며 입으로는 동네 혼사가 오간다. 부엌에선 소고기뭇국에 수육이 냄새를 풍긴다. 김장 마치고 한 상 둘러앉아 수육에다 노란 배춧속 뜯어내 김장 양념 속에 굴 얹어 먹는 맛은 세상 비길 것이 없다.

아버지는 김칫독을 앞마당에 묻고, 짚방석을 덮어씌운다. 하얀 이 덮인 날에도 김장김치 꺼내러 가면 하시는 말씀이 있다.

"헤집지 말고 김치 꺼내고 꼭꼭 눌러라."

온 가족이 분주하게 이틀을 준비하고 마무리하면서 온 동네잔치로 품앗이하던 시절이 그립다. 올해는 친구들 불러다 일 벌여볼까. 혼자는 엄두가 안 나니 함께해야 재미도 곱이지.

며눌애가 소고기뭇국은 끓여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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