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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희 컬처플러스] 나의 시계는 어디에 있는가
[이경희 컬처플러스] 나의 시계는 어디에 있는가
  • 프리덤뉴스
  • 승인 2021.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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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이경희의 컬처플러스]

나의 시계는 어디 있는가?”

20세기 가장 독창적인 천재라 일컫는 살바도르 달리의 유언이다.

사랑하는 아내 갈라가 사망한 후 자살 기도를 거듭하다 결국 19898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렇게 사랑하던 아내, 갈라를 만난 지 만 60년이 되는 해였다.

내 어머니보다, 내 아버지보다, 피카소보다, 돈보다, 나는 갈라를 더욱 사랑한다.

그녀가 나를 치유했다.”

달리의 말은 그의 사랑을 단적으로 표현해준다.

그에게 치명적인 결핍이 있었고, 그걸 어루만져줄 사람은 사랑하는 여자 갈라뿐이라는 말이다.

갈라는 원래 프랑스 시인 폴 엘뤼아르의 부인이었다.

친한 지인의 부인이었음에도, 열정적으로 그녀에게 사랑을 애걸한 달리는 결국 갈라의 마음을 흔드는 데 성공한다.

당시 프랑스 파리에서 자신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었지만, 달리는 갈라와 함께 도주했고 급기야 잠적하기에 이른다.

 프랑스 파리 살바도르달리 미술관 소장 조각품

 

그때가 1929년이었다.

그로부터 5년 후에야 갈라는 시인인 폴 엘뤼아르와 정식 이혼하고 달리와 결혼하게 된다.

그때가 갈라 나이 40, 달리 30살이었다.

열 살이라는 나이 격차는 달리의 사랑에 어떤 장애요인도 아니었다.

두 사람이 함께 지내기 시작하면서 달리의 작품에는 갈라가 다양한 모습으로 등장하게 된다.

뿐만아니라 달리는 자신의 작품전시에 관한 모든 일을 갈라의 결정에 의존하기 시작한다.

결국 갈라에게 매니저 역할까지 맡기게 된 그는, 전시 일정부터 모든 계약관계까지 심지어 작품 판매에 대한 부분까지 자신의 모든 권한을 갈라에게 넘겨주게된다.

자신의 생이 오직 갈라만을 위해 존재하기라도 하는 듯 달리는 자신의 작품 창작과정까지 그녀의 개입을 허락하기에 이른다.

오직 갈라를 위해 발레 공연을 기획하고, 무대를 제작했다.

달리는 갈라가 없다면 아무것도 아니다.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공공연히 인정하는 두 사람의 관계였다.

그러면 달리가 그토록 사랑했던 사랑의 여신, 갈라는 어땠을까? 생을 바쳐 온전히 그녀만을 사랑한다는 것에 감사함이라도 가졌을까?

갈라의 관심은 조금 다른데 있었다.

젊음과 미모를 유지하는데 몰두한 갈라는, 고가의 화장품뿐 아니라 성형수술과 시술을 번갈아 자신의 외모를 아름답게 가꾸는 데만 집착했다.

갈라가 젊은 외모에 집착한 것은 자신보다 열 살 젊은 달리를 위한 것은 아니었다.

주변의 모든 남성들을 위한 것이었다.

뭇 남성들과 염문을 뿌리고 다니던 그녀는 결국 1968년 달리에겐 청천벽력같은 결별을 선언한다.

달리가 마련해준 성에 들어가면서 자신의 허락없이 달리의 출입을 금한다고 공표한 것이다.

 

자신의 뮤즈가 떠나자, 달리는 심각한 우울증과 신경쇠약으로 고통의 시간을 보내게 된다.

시간이 지나도 주변 남성들과의 애정행각이 잦아들지 않자 달리는 사랑하는 갈라와 다투게 되고 나중에는 심한 폭행까지 하게 된다.

두 사람의 심한 몸싸움으로 갈라는 갈비뼈가 부러지고, 달리는 일시적 혼수상태까지 이르게 되면서 두 사람은 정신적 신체적 만신창이가 되는 상황에 이른다.

그토록 갈라에 집착한 달리의 결핍은 무엇이었을까?

 

달리가 태어나기 1년 전, 세 살이었던 달리의 형이 위장염으로 죽는 일이 벌어졌다.

형이 죽은 후 달리가 태어나자 부모는 그의 형이 환생한 것이라 믿고 이름을 살바도르 달리라고 지은 것이다.

우리가 아는 그 유명한 이름 살바도르 달리는 원래 죽은 형의 이름이었던 것.

 

"나는 결코 죽은 형이 아니며 살아 있는 동생이라는 것을 한순간도 잊지 않고 항시 증명하고 싶었다.“

 

달리의 인터뷰를 보면 그가 형의 그림자 아래서 매우 고통받았다는 걸 알 수 있다.

파리의 달리미술관에 전시된 그의 작품들은 어둡고 기괴한 것들이 많다.

특히 천정에 높이 매달아 놓은 일곱 벌의 드레스는 마치 못을 매단 여인들을 상징한 것처럼 오싹함을 주기도 한다.

그의 결핍이 그 위대한 작품의 자양분이었다는 것은 인정한다.

그리고 그 결핍의 예술적 승화가 20세기 가장 독창적인 천재를 만들었다는 것에도 이의 없다.

하지만 한 인간으로서의 달리, 한 남자로서의 달리는 과연 행복한 사람이었을까?

살바도르 달리, 그는 한 예술가로서의 성취나 업적은 성공적일 수 있지만 한 인간으로서의 그는 불행하고 힘든 삶을 살았다.

갈라에 의해 결핍이 치유되고, 갈라에 의해 천재적인 예술작품이 세상에 나왔다는 것을 전제한다면 그의 사랑은 칭송받아 마땅할 수도 있다.

하지만 온갖 상처를 남긴 그의 사랑이 과연 그에게 행복이었던가에 대해 누구도 단정지을 수는 없을 것 같다.

 

내 나이 세살 때 나는 요리사가 되고 싶었지.

내 나이 다섯 살 때 나는 나폴레옹이 되고 싶었어.

나의 야망은 점점 자라났고 지금 내 최고의 야망은 살바도르 달리가 되는 것.

하지만 그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라네.

내가 살바도르 달리에 다가갈수록 그는 더 멀리 달아나기 때문에.”

 

태어나자마자 죽은 형의 이름으로 불리워져야만 했던 살바도르 달리.

평생 그는 자신의 이름을 찾느라 삶을 고통으로 몰았던 건 아닐까.

이름과 무관하게 자기만의 생이라는 인식으로 세상을 보았더라면 자신만의 행복한 삶을 살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가 생의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 의미를 갖는 이유다.

나의 시계는 어디에 있는가

 

소설가 이경희 프로필

2016년 중앙일보에 장편소설 '제8요일의 남자'를 연재했으며 단편소설로는 '작약' '연의기록' '전생을 기억하는 여자' 등 다수를 발표했다.

제19대 국회의장단 홍보기획관을 지냈으며, 국회도서관 국회보 편집위원, 일간지 문화부기자, 경기도 공무원교육원 겸임교수로 활동했다.

저서로는 JTBC 드라마 '품위있는그녀' 원작소설 1,2와 예술치유에세이 '마음아 이제 놓아줄게' 등이 있으며 조선일보 조선PUB에 문화칼럼을 연재했으며 현재 에브리북에 소설 '엘리자베스 캐츠아이'를 연재 중이다.

*작가 이경희의 <컬처플러스>에서는 책과 영화, 음악, 드라마 등등의 작품과 더불어 종교와 역사이야기를 더해 소소한 인생이야기를 나누는 코너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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