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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明時待 마중물] 잃어버린 것들
[光明時待 마중물] 잃어버린 것들
  • 프리덤뉴스
  • 승인 2021.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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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것들

 

집안이 망할 때는 경제적으로만 망하는 게 아니다.

망한다는 것, 그것은 과거 소중히 여기던 것을 모두 잃어버리는 것을 뜻한다.

서운이는 대학 1년생 새내기이다.

코로나19라는 세계적 전염병이 창궐하여 국가는 물론 국민 전체가 시름시름 앓고 있던 2021, 서운이는 입학식도 온라인으로 치르며 대학교에 입학하였다.

인 서울이라고 좋아하시며 서울에 방 한 칸을 얻으러 다니셨던 아버지는 매번 너무나 높은 임대료에 놀라 포기하고 돌아서곤 하셨다.

그러다 겨우 어느 언덕바지에 있는 오래된 집 완전 지하방 한 칸을 거금의 보증금과 눈 돌아갈 만큼의 월세를 주기로 하고 계약하셨다.

서운이는 온라인 수업이 해제되면 등교를 하기 위해 미리 월셋방에 단촐한 짐을 옮겼다.

서울의 거리를 돌아다니고 친구들과 월등히 높은 수준의 서울 문화를 체험해보고자 했던 서운이의 꿈은 바람에 날아가고 말았다.

전염병은 사회와 문화를 완전히 바꿔놓고 말았다.

명동은 찬바람이 휭- 불고, 이태원은 음침할 정도였다.

서운이가 할 수 있는 일은 컴컴하고 퀘퀘한 냄새가 나는 지하방에서 컴퓨터로 온라인 수업을 듣고 남는 시간을 게임으로 때우는 것뿐이었다.

 

3월 말쯤, 시골에서 비보가 왔다.

바닷가에서 관광객을 상대로 작은 횟집을 하던 서운이네는 코로나19의 타격을 제대로 받았다.

입학 무렵에도 아버지는 한숨을 들이쉬고 내쉬며 손님 없는 가게를 닦고 또 닦았었는데 결국 문을 닫게 되었다. 엄마가 간암으로 죽고 혼자서 가게를 운영하던 아버지를 도와 홀 써빙과 설걷이 등을 해야 했던 서운이는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자기만의 시간을 가질 수 없었다.

아버지는 서운이가 떠나면 알바를 구해야겠다고 했었다.

그런데 알바를 구할 일도 없이 폭삭 망했다.

은행빚과 활어를 대주던 사장의 밀린 수금 독촉에 아버지는 홧병이 나서 매일 술을 마셨다.

통화할 때마다 꼬부라진 취한 소리로 우리 갱갱이 사랑한데이. 아부지가 니 많이 사랑하는 거 알제? 서운이 니, 서운타카모 내 참말 서운타.” 하면 서운이는 내도 아부지 사랑합니데이. 술 고마 마시이소. 내 걱정은 말고 밥 쫌 챙겨 드시고요.” 하곤 했다.

그런데 그 아버지가 취한 걸음으로 어딜 가시다가 그만 바다에 빠지셨다는 것이다.

 

어떤 일이 어떻게 일어나고 무엇이 왔다 갔는지도 모르게 뭔가 부산한 날이 지나갔다.

멍하니 앉아있는 자신을 발견했을 때, 서운이는 텅 빈 홀을 바라보며 내실에 앉아있었다.

드라마 보면 안 그러던데? 사람이 죽었다고 모든 것이 다 사라져? 어떻게 이럴 수 있지?

서운이 눈에서 눈물이 찔끔 솟았다. 그래도 안 울었다.

식탁과 의자가 가득했던 홀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벽에 붙은 선풍기까지 싹 다 떼어갔다. 가게 오픈할 때 외삼촌이 가져다 걸어준 액자 하나만 덩그러니 붙어있었다.

뒤돌아 내실을 보니 내실의 식탁이며 집기들도 사라졌다. 국방색 화투담요만 구석에 아무렇게나 던져져 있었다.

옛날에 손님이 북적일 때는 밤늦도록 그 담요에 화투를 치던 손님들 때문에 저 진상들 언제 가나 속으로 많이도 욕했었는데.

주방에 가보니 아버지가 회를 뜨던 테이블도, 개수대도, 매운탕을 끓이던 가스버너도 모조리 가져가버렸다.

수도꼭지만 덩그러니, 구멍을 막아버린 가스 호스만 덜렁덜렁. 혹시? 밖으로 나가보니 역시 가스통도 없다. 또 눈물이 찔끔 솟구쳤다. 그래도 안 울었다.

3월 말의 밤은 춥다. 하나뿐인 외삼촌 부부가 서운이와 함께 며칠을 지내며 장례를 치르고 가구며 집기를 다 정리하고 버릴 것은 버리며 도와줬다.

외삼촌은 가게도 곧 비워줘야 되는데 서울서는 견딜만한지 물어봤다.

, 서울!

그 많은 월세는 이제 어떻게 내지?

학교는 어떻게 하지?

이제 어떻게 살지?

쌀쌀함을 넘어 춥기까지 한 그 밤에, 가게 앞에서 왔다 갔다 서성이는 서운이를 외숙모가 불러들였다. “니 그라다 감기든데이. 퍼뜩 들어온나.”

홀 바닥에 은박매트를 펼치고 휴대용 가스렌지에 매운탕을 끓이고 계셨다.

이건 으데서 났스요?”

옆 가게에서 배나 채우라고 줬단다. 아버지랑 각별한 우정을 자랑하시던 말라깽이 아저씨.

배를 채우고 내실에 들어가니 이미 외삼촌은 코를 골고 주무신다.

내실 옆 쪽문을 열고 들어가면 아주 작은 서운이의 방이 있다.

비로소 그 문을 열어본 서운이는 깜짝 놀랐다.

내 책상, 내 책들, , ...... .

비키니옷장 속의 옷들만 몇 벌 남기고 정말 싸그리 쓸어갔다.

, 거기 옷장 속에 니 앨범 있다. 내가 그거는 놔놓고 가라 했다.”

외숙모가 뒤따라 들어오시더니 장승처럼 서서 무표정한 얼굴로 서운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내 일기장은요?” 외숙모가 도리질을 친다.

내 일기장, 내 일기장, 그거는 진짜로 안 되는데, 그거는 내 낀데!’

참고 참았던 눈물이 와락 쏟아지면서 서운이는 통곡을 하고 말았다.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도 참았던 울음이, 텅 비어버린 가게를 보고도 참았던 울음이, 막막한 앞날에 대한 두려움 앞에서도 참았던 울음이 터지더니 꺼이꺼이- 통곡을 한다.

서운이는 엄마가 입원했던 날부터 일기를 써왔고 몇 권이나 되는 일기장을 책꽂이에 꽂아두었다. 서울로 간 후부터는 컴퓨터에 일기를 쓰고 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컴퓨터에 일기를 쓸 걸. 엄마...... .’

망했다아-!

엄마도 망했고, 아부지도 망했고, 가게도 망했고, 내 과거도 망했다아-!

다 잃어버렸다! 우야믄 좋노!”

3월이 끝나는 무렵, 바닷가 매서운 바람 속에 서운이의 절규가 울려퍼졌다.

서운이는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할까?

 

2021.05.06. 光明時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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